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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박사 칼럼] “밝은 말, 밝은 교회”

황현조 목사(커네티컷교협회장, 비전한인교회 담임)

“밝은 말, 밝은 교회”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고 중요한 단어는 “사랑”이다. 세속사회에서나 종교사회에서나, 사랑은 인생의 핵심적 관심사다. 정신 심리학자들의 관찰에 의하면, 인간의 가장 깊은 내면적 욕구는 사랑받고 싶어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랑은 인간 정서를 안정시키며 활력과 기쁨을 준다. 반면에 사랑의 결핍과 사랑에서 격리된 소외감은 심각한 인격적, 감정적 결손을 초래한다. 감옥에서도 외로운 독방 감금은 형벌중의 형벌에 속한다. 건강한 결혼, 가정, 사회,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 요소는 사랑이다. 자동차에 엔진 오일이 부족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랑이 결핍된 곳에는 인생 엔진이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고 하였다(고전 13:1).

사랑의 본질은 타인에게 유익을 주고 용기를 주는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자녀들과 이웃의 삶속에 나타나는 만족과 기쁨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랑이 이렇게 중요한 것인 만큼, 사랑을 창조하는 축복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부단한 인격적 수양과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 죄악이 오염된 인간사회에는 사랑보다는 미움, 격려보다는 부정적 비판이 더 많은 편이다.  보통 사람들은 남을 비판하면 자기 우월감이 만족되고 자기의 명철함을 자타에게 확인시키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열등감의 변형된 표출일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건설적 비판이 필요하고 또 아부해서는 안된다는 명분하에 남에 대한 격려와 칭찬을 아주 인색하게 하면서 자기 오만을 합리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건설적 비판을 할려면 먼저 자기 검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상대방과 공동체를 일으켜 세우려는 진정한 사랑이  전제돼야 한다. 아부는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한 속이는 칭찬이라면, 격려는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며 사랑하고 감싸주고 용기를 주는 진실된 칭찬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시민의 자격을 가르치는 산상보훈에서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우리 모두에게 경종을 울리셨던 것이다(마 7:1-3).

마크 트웨인은 “사람은 칭찬을 한번 받으면 두 달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했다. 그의 말을 따르자면, 남에게 일년을 행복하게 살게 해 주려면 여섯번을 칭찬하면 된다. 사회에서나, 교회에서나 우리 모두 서로가 이렇게 칭찬하고 살면 얼마나 행복한 공동체가 일년 내내 유지 될 수 있겠는가?

지혜의 왕 솔로몬은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잠 18:21)라고 했고, “근심이 사람의 마음에 있으면 그것으로 번뇌케 하나 선한 말은 그것을 즐겁게 하느니라”(잠 12:25)고 교훈했다. 혀의 독설과 건전하지 못한 비판, 중상모략이 가정과 사회를 망치고 교회를 멍들게 한다. 무지막지한 탱크가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제어되지 못한 세 치 혀가 가정과 사회, 교회들을 허문다. “작은 불이 많은 나무를 불태우듯이 작은 혀가 인생의 바퀴를 불사른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심각하게 경고한다 (약 3:5-6). 하지만 혀의 칭찬과 격려, 사랑과 감사의 말은 공동체를 일으켜 세운다. 모두에게 용기를 주고 행복하게 만든다. 이 얼마나 좋고 축복된 일인가?

사람은 누구에게나 부족한 점이 있고 불안한 면이 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자신감을 잃을 때도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일으켜 세워 잠재된 가능성을 펼치게 하는 것은 부정적 비판이 아니라 긍정적 사랑과 격려의 말이다. 그러나 우리네 공동체를 돌아보면 후자보다 전자가 더 많은 것이 부인하지 못할 현실이 아닌가? 사랑과 격려의 말로써 우리네 가정과 공동체를 일으켜 세워가는 “행복 전도사”들이 많아지는 밝은 사회와 밝은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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