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황현조 박사 칼럼] “부활”

황현조 목사(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부활”

부활절을 앞두고 극장가에서 상영되었던 “Risen”(부활)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이 영화는 한 로마 군인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후에 극적으로 변화되는 삶의 모습을 그렸다. 로마제국의 고위 장교인 크라비우스는 잔인한 직업 군인이었다. 그는 빈번히 발생하는 유대인들의 로마제국에 대한 반란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살육의 칼을 휘두르던 자였다.

당시 로마 총독이던 본디오 빌라도 법정에서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게 되자, 빌라도는 크라비우스에게 예수의 십자가 처형과 죽은 시체를 매장하고 지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그는 예수의 무덤 입구를 큰 돌로 막고 밧줄로 동여맨 후 많은 파수병들을 세워 삼엄하게 감시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왠 일인가? 삼일 후에 예수의 시체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빈무덤이라는 청천벽력같은 보고를 받았다. 그는 그때 직무불찰의 죄로 자신의 직위가 날라가고 감옥에 갇혀질 순간이었다. 곧 그는 예수의 시체실종 미스테리에 대한 수사를 착수했다. 무덤을 지키던 파수병들을 철저히 심문했으나, 예수의 부활을 보고 혼비백산 했었다고 말하는 그들의 목격담은 믿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제자들이 예수부활의 헛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시체를 도적질 해 갔다는 “도적설” 혐의에 수사의 촛점을 맞추었다. 이 “도적설”을 불행히도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아직도 믿고 있다.

크라비우스는 체포조를 조직하여 시체를 훔쳐간 범인들을 추적했다. 그런데,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잡은 범인들은 그가 생각했던 도적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느 골방에서, 부활한 예수를 황홀한 감격 속에 바라보며 그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던 11명의 순박한 제자들이었다.

크라비우스는 이상하게 그들을 도저히 체포할 수 없게 만드는 신비한 힘이 자신의 몸 속에 전율처럼 흐르는 것을 느꼈다. 피 비린내 나는 전쟁 터에서 평생 살아왔던 그가 예전에 전혀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그토록 의심했던 예수의 부활 사건이었지만, 지금 자기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도저히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그는 잔혹한 로마 군인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겸손한 신자로 변화된다.

나중에 상관 빌라도 총독이 그에게 묻는다. “너는 인생에서 도대체 무엇을 갖고 싶었나?” 그는 대답한다. “권력과 돈… 아니 사랑하는 사람들, 전쟁과 살인없는 세상, 영원한 평화와 안식을…” 그는 소위 출세한 군인이었지만 가슴이 텅 비어 있었다. 삶의 무의미함과 허무감이 그의 인생을 짓누르고 있었다. 진정한 평화와 안식을 모른채 살고 있었다.

그러했던 그가 이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새 사람으로 거듭난다. 의심자에서 확신자로 변한다. 자신의 모든 죄가 예수를 믿음을 통해 깨끗이 씻음받는 중생을 체험한다.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운데서 풍성한 영적생활을 누리기 시작한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이제 결코 예전의 자신과 같지는 않을거야(I can never be the same).”

사랑의 예수님은 갈등과 증오와 전쟁이 난무하는 이 세상을 친히 찾아 오셨다. 그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과 희생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후 사흘만에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He Has Risen! 그리하여 우리에게 세상이 결코 주지 못하는 영원한 평화와 영생의 소망을 주셨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죄와 사망의 종노릇하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히 2:15 ).

예수님의 부활사건은 기독교 신앙의 기초 반석이요 인류역사의 분수령이다. 17세기 기독교 사상가요 천재적 수학자였던 파스칼은 그의 명저 “팡세”(Pensees)에서 부활을 믿지 못하는 무신론자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출생과 부활 중에 어느 것이 더 어려운가? 무존재에서 존재로 출생하는 것이, 이미 존재했다가 죽어 다시 존재로 부활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 아닌가? 즉 부활을 믿는 것이 출생을 믿는 것 보다 더 쉬운 것이 아닌가?”

그런데 사람들은 어려운 출생은 믿으면서도 그 보다 쉬운 부활은 안 믿는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물으신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 세상의 모든 인류는 예수님의 이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해야 한다. Yes or No?

“예수스 에겔세이스! 예수 부활하셨네!”—이것이 바로 초대교회 성도들이 목숨걸고 전파했던 “케류그마 복음”의 핵심이었다. 우리도 이와같이 뜨거운 부활신앙을 가슴에 안고서, 나팔같이 생긴 부활의 꽃 백합화(Lily)를 입에다 대고 부활의 케류그마를 이 세상에 널리, 크게 전파하도록 하자. “He Is Risen!”

조회수 4회댓글 0개

최근 게시물

전체 보기

Commen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