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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칼럼] 이 우울한 성탄절에…

참 얄궂은 날들이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신문을 아무리 뒤져도 좋은 소식이 없다. 아무리 귀를 쫑긋해도 훈훈한 소식이 없다. 그래도 크리스마스요, 그래도 연말연시인데…. 온 세상이 우울하고, 답답하다.

들리는 조국의 소식도 우울하다. 국회 소식도, 청와대 소식도, 정부의 결정도 한결같다. 크리스마스를 망치기로 작정했나 보다. 미국의 소식도 슬프고 아프다. 치솟는 확진자 숫자도 정치계, 교육계 그리고 법조계 결정들이 한결같이 하나님을 조롱하는 듯하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문재인 정부는 성탄절을 석가 탄신일처럼 기독 탄신일로 개명을 하려고 했었다. 올해는 코로나 방역으로 교회를 핍박한다. 이 정부는 염장 지르기 위한 역사적 사명을 띠고 출범했나 보다. 이런 움직임에 터지는 분통으로 내 뿜는 한숨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코로나가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광장의 촛불이라도 볼 수 있게.

이 우울한 날에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삶의 벼랑 끝에서 손을 내밀었던 사람이었는데, 우리 손을 잡지 못하고 떨어졌다. 망연자실이라는 표현은 너무 싱겁다.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저며 오는 아픔으로 한동안 아무것도 못 했다. 개인적 사정으로 움직이기도 어려운 형편이었다. 힘을 내고 싶었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멍한 눈에 들어온 사진 한 장, 방문했던 아이티 투찌에 마을 학교에서 노엘 전도사와 찍은 사진이었다. 노엘은 아이티에 태어나 가난과 절망을 뚫고 힘차게 살아가는 젊은이다. 아이티의 최 빈민 지역에서 아이들과 함께 뒹굴며 아이들과 자신의 꿈을 가꾸는 사역자다. 오래전 한국 선교사가 운영했던 한글학교를 다녀 한국말이 유창하고 카톡으로 소통하는 젊은이다.

어렵게 통화를 했다. 잠시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통화가 길어졌다. 전하는 소식들은 더 우울하고 더 아팠다. 가난한 사람들이 코로나로 더 어렵고 힘들다는 소식에 마음이 쓰라렸다. 그 어려운 현장에서 그들을 품고 몸부림치는 노엘 전도사가 애처로웠다. 위로하고 싶었다. 학교와 교회 상황을 물었다. 성탄절 계획도 들었다. 안타까운 소식들이었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페이스북으로 또 한 통 받았다. 수리남 친구 마이클 목사다. 수년 전 도왔던 고아원 이야기를 나눴다. 어려운 형편이었다. 기도가 절로 나왔다. 저들을 도와주옵소서! 아이티도 수리남도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들을 도와줄 사람이 없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무기력한 목사의 넋두리 같은 기도였다.

눈을 뜨고 책상에 앉았다. 기도 중에 너는 ‘왜 가만히 있느냐?’ ‘너는 뭐하냐?’ 이런 소리가 마음을 울렸다. 그래서 카톡 카드를 만들어 기도 동역자들에게 보냈다. 신문사 광고도 의뢰했다. 아무 기대 없이… 어려운 시절에 부담을 주는 것 같아 송구한 마음으로…

신실한 사람들과 귀한 공동체들이 전하는 성탄절 사랑에 무릎을 꿇는다. ‘주님! 감사합니다! 기쁘고 복된 소식으로 아이티 극빈 아동들과 수리남 고아들이 새 힘을 얻게 하소서! 생명의 양식(Bible)과 육신의 양식(Bread)을 통해 영육이 살게 하소서!! 저들이 영원한 소망을 누리게 하소서!’ 이 우울한 성탄절에 크고 작은 사랑의 나눔을 통해 기쁨과 생명이 전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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