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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천 목사(여수제일교회 담임) 인터뷰

건강한 교회로 패러다임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인터뷰하는 김성천목사

부흥회(나성열린문교회) 인도 차 L・A를 방문한 김성천 목사는 115년 된 여수제일교회 담임목사로서 3대째 교역자의 집안에서 성장한 목사다.

외조부 문재구 목사, 부친 김홍래 목사 이외에 외가 쪽으로 큰이모부 정규오 목사를 비롯한 교계 지도자들이 많다.

어릴 때 아버님의 성공적 목회현장을 보면서 목회자로서의 자존감이 형성되고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총신대에 입학하고는 부친의 목회에 굴곡을 접하면서 목회에 부담감을 느끼면서 자퇴를 하고 방송대학을 다니면서 세상과 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신앙적 면에서는 위기였으나 방황 2년의 기간은 세상을 이해하는 시간이 됐고 김 목사의 목회에 많은 도움을 준 셈이 됐다.

김 목사는 젊은 나이에 목사도 되고 교수를 하다 보니 가르치는 것이 배우는 것이 되어 가르치면서 신학이 형성됐다고 말한다. 그러나 두 차례의 혹독한 시련이 있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노원구 중계동에 위치한 상명교회 담임으로 교회 건축하는 과정에서 관념적인 신앙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는 신앙으로 바뀌는 계기가 됐다.

감옥에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오직 믿을 곳은 하나님 뿐, 목회는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고 고백한다. 또한 여수제일교회 부임 이후 십 년 만에 신도시에 백 주년 기념 예배당 건축 실패로 인한 불같은 시련이 있었지만 오히려 목회자로서 더욱 겸손하게 성숙할 수 있는 연단의 기회가 되었다.

1984년 목사안수를 받고 85년 한사랑교회, 90년 상명교회를 거쳐 2002년 여수제일교회에 부임했으며 현재 총신대학교 초빙교수와 광신대 석좌교수로 강의하고 있다. 김정길 사모와의 사이에 3녀와 5명의 외손자, 손녀가 있다. 다음은 김성천 목사와의 일문일답.

– 여수제일교회와 여수 지역을 소개하신다면?

본 교회는 115년 된 교회로 현재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고 본다. 전체 성도 천 오백 명으로 연세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많다. 최근 들어 40대와 50대의 젊은 성도들이 증가하고 있다.

여수는 십 년 전 ‘세계해양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던 30만 중소도시다. 그 기간동안 여수 교계에서는 복음 엑스포를 준비하여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초대 선교사 이기풍, 윤형숙 전도사(본교회 출신의 3・1운동 시 옥고 치루고 6・25 때 순교) 등 순교신앙의 유산을 민족교회에 계승할 수 있었다.

엑스포는 교회뿐 아니라 여수 지역이 놀랍게 발전할 수 있는 축복의 기회가 되었고 가슴앓이를 치유하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경제 활성화, 도로시설 향상 등이 이뤄지게 되었고 영적으로는 순교신앙의 유산을 방문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었다.

최근 73년 동안의 한이 맺혔던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일부 시민들의 명예회복, 용서를 넘어서는 사랑과 평화추모공원설립 위한 법안이 통과되었는데 그 일에도 앞장서게 되었다. 현재 사단법인 민족지도자 손양원 목사 기념사업회 이사장과 여순사건 평화추모공원설립 위한 범시민 기도운동 대표로 심기고 있다.

– 목회와 교수직을 병행하고 계신데 목회 철학을 말씀해 주신다면?

목회와 신학공부를 동시에 시작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처럼 목회를 할수록 목회와 신학의 균형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잘못하면 실용주의로 흘러서 교회 수적 성장에만 집중하게 된다. 강단의 포플리즘이나 엔터테인먼트, 긍정의 힘, 심리학 등에 치우치지 않는 연속 성경강해설교를 하고 있다.

목회 철학은 전체적으로는 신학이 있는 목회를 하려고 한다. 한국교회에 개혁주의적 신학이 정착됐는지, 발전이 됐는지가 문제다. 145년 기독교 역사를 회고해 본다면 초기에는 근본주의적 신학이 들어왔지만 나중에 자유주의 신학을 물리치는데 극약처방을 하기도 했다. 그것이 이원론인 성속분리다.

70, 80년 이후 부상(浮上)한 홍정길, 옥한흠 목사 등의 복음주의 신앙이 사회적인 기여는 많이 했지만 아쉬운 것은 그들의 신학적 정체성은 (칼빈)개혁주의는 아니다. 근본주의의 뿌리인 청교도 신학의 장점은 언약과 하나님의 주권을 전 영역에 펼치는 것이다. 초기에는 사회적 현상과 더불어 대단한 전도의 원동력이 됐다.

폭발적으로 한국교회가 성장하면서 기도운동이나 십일조 신앙이 개인 경건에 그치고 번영의 신앙이 들어왔다. 지나친 교회 성장운동으로 인해 결국 개혁주의가 되지 못한 셈이다. 이제 21세기 기독교 역사의 대과제가 있다면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신학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교회 안에만 있지 않고 사회 전영역으로 나가야 한다.

이 시대는 사사시대와 같은 영적 무정부시대가 되었다. 이제 성경적 부흥운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즉 사도행전의 원색적인 교회로 돌아가서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 사랑과 나눔의 교회공동체, 평신도 운동의 삼박자가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 교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신학교에서 강의를 한다. 목회현장 이야기만이 아니라 신학이 있는 목회를 가르친다.

  1. 국교회 미래를 전망하신다면?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희망적이다. 한국교회는 1980년대까지 폭발적인 성장을 이뤘다. 80년대 중반부터 사실상 교회 성장은 중지됐고 90년대 중반부터는 마이너스라고 본다. 정상에 오르고 나면 내리막길이 있게 된다.

18세기 유럽이 산업혁명 후 하나님을 멀리하게 됐듯이 세계 교회사를 보면 삶의 질이 높아지면 교회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물론 미국교회는 좀 다르지만 경제성장의 언덕에 포플리즘이 나타나게 되었다. 세계 10위권 국가 중에 하나님이 필요 없다는 나라들이 많다.

이전에는 교회가 세상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문화나 지식의 통로가 됐는데, 이제는 교회가 세상을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된 셈이다. 그저 양적인 교회 성장만 모색하는 신학 없는 지도자들이 나타나는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 한국교회는 내려갈 때까지 내려갔다고 보고 더 이상 성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제는 건강한 교회, 성숙한 교회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한국교회 폭발적인 성장 배경 중 하나는 무인가 신학교 남발로 인한 목회자 양산이었는데 출산율 감소로 일반대학이나 신학교 모두 자동정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최근 팬데믹으로 인한 예배 제한은 한국교회 쇠퇴를 부채질하고 있다. 위기는 문자 그대로 위험한 기회이다. 이제 양적 성장에서 영적 성장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성경적 개혁신앙으로 다져진 훈련중심의 목회로 위기를 극복해야 할 것이다.

또 한 가지는 한국이 선교사 2만 5천 명 시대에 도래했다는 점이 인구 비율로 미국을 능가한다. 제3의 물결, 아태시대, 동서의 평균화. 중국은 이미 기독교 인구가 한국을 앞섰다. 세계선교는 중국과 인도가 한국선교를 제친다는 평가가 있지만 이미 한국은 복음의 네트워킹이 구축돼 있고 기독교 문화의 DNA가 준비돼 있다고 본다. 즉 세속화가 기독교를 망치기도 하지만 한류 열풍을 잘 이용하면 복음의 역수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 금번 부흥성회를 인도하신 나성열린문교회에 대한 소감은?

미주 디아스포라 복음화의 전진기지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교회이다. 담임 박헌성 목사님은 총신대학 졸업 후 도미 유학하여 신대원(M.Div)과정부터 신학석사(Th.M)와 신약신학 분야의 학위(Ph.D)까지 취득하신 지성과 영성을 겸비한 국제적인 선교와 목양의 리더십을 지닌 목회자이시다.

지난 삼십 년 가까이 나성열린문교회를 개척하시고 건강한 교회성장의 모델 역할을 감당하셨다. 한동안 교회당 건축의 시련이 있었지만 그 시련은 교회와 담임목사 모두에게 양적 성장에서 영적 성숙을 이루는 연단의 기회가 된 점에 대하여 필자와 여수제일교회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어 더욱 특별한 영적 전우애를 느끼는 교회이다.

깊이 있는 신학적 통찰과 현대문화적 감각이 어울려지는 감동 깊은 설교와 새벽을 깨우는 새벽기도 영성이 건강한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다. 장로님들 비롯한 제직들의 헌신의 강도가 마치 빌립보교회가 바울의 선교의 면류관이 되었던 것처럼 열린문교회 직분자들의 헌신이 뒷받침되어 담임목사의 미주 복음화 리더십이 형성될 수 있었다.

특별히 박헌성 목사께서 국제개혁신학대학원 총장으로 사역하시는 신학교는 미주 복음화와 제 3세계 지도자 양성의 교육기관으로 쓰임 받고 있다. 미군복음화 위한 군종장교 지정학교가 된 것도 큰 의의가 있다.

– 해외 이민교회에 거는 기대가 있으시다면?

40, 50년 전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전통적 신앙과 열정을 갖고 있는 이민교회에서 자라난 1.5세, 2세들에게 기대를 건다. 영어에 능통한 한국인 DNA를 가진 2세 디아스포라들이 본국 교회보다 더 큰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문화적, 언어적, 선교적 자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디아스포라 기독교 지도자들이 다음 세대 신앙교육에 집중한다면 이제 열방을 향한 제사장국가 사명 감당은 해외 이민교회가 리더십을 발휘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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