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종호 판사
호통판사’ ‘소년범의 대부’로 알려진 천종호 판사(장로)가 그의 새 책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를 발간했는데, 법조인인 그의 인생에 결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예수 이야기라고 한다.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 책 표지
천종호 판사는 사법사상 8년 최장기간 동안 12,000여명의 소년재판을 담당하며, 호통판사로 그를 만난 소년범들의 인생을 바꾸며 청소년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그의 특별한 이력으로도 유명하다.
천 판사는 부산의 달동네 서구 아미동 까치고개에서 부모님과 7형제와 함께 9명 식구가 살았다. 그만큼 가난했다.
또한 그가 초등학교 5학년때 같이놀던 친구들이 주일 오전이면 가던 아미동교회(현 아름다운 교회)에 친구따라 출석하게 됐다.
대학 진학을 앞두고 고민하던중, 원서접수 마감일에 우연히 길에서 만난 친하지도 않던 친구가 대학 접수를 묻더니, 고민하던 천 판사를 대신해 부산대 법대에 원서를 냈다. 대학에 진학한 후 7번 낙방후 8번째 사법고시에 합격했다.
판사 임관은 성적순으로 하는데, 연수원 26기였던 그의 성적은 50대 등수였다. 한해 선배였던 25기의 경우 40명까지 판사임관이 됐으나, 26기부터 예비판사제가 도입돼 75명이 판사로 임명되어 천 판사도 임명 받았다.
천종호 판사는 가난한 가정환경으로 가족 부양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웠다. 7형제중 혼자 대학을 나왔기에 20년 정도 판사 근무 후 변호사로 개업해 가족을 도와야겠다는 계획이었다.
부산고등법원에 3년 근무 후 보통은 부산지방법원으로 인사발령이 나는데, 창원지방법원으로 가게 되면서 그의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 천 판사는 “지금와서 돌아보면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고백한다.
창원지방법원에서 소년재판을 담당하게 됐는데, 일반 사건과 달리 소년재판은 판결문 쓰는 노력이 덜해 시작하게 됐다고 한다.
사실 변호사를 계획하는 이들은 영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년재판을 선호하지 않으며, 전국 판사 3천여명 중 소년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는 30명도 안된다.
소년재판을 경험해보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사건이 많아 하루 평균 6시간 동안 100명을 재판하는데, 1인당 할애 시간이 평균 3분이다. 이것도 인적사항, 사건경위 물으면 2분이 지나가고 1분간 판결을 내려야 한다. 천 판사는 “아이들이 3분 만에 재판을 받고 돌아가면 법정에 대한 경각심을 못 가질거 같아서 호통을 치게 됐다”고 말했다. 다시는 법정에 서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이들에게 호통을 쳤고, 부모들에게도 호통을 쳤다고 한다.
천 판사의 호통치는 재판의 모습이 언론에 노출되며 많은 관심을 받았고 이후 ‘호통판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거칠어 보이는 모습과 달리 내면엔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기에 이해하는 인생 선배로서의 안타까움이 있었다고 한다.
천 판사의 중학교 동창이 부산 폭력조직인 칠성파에 가담해 현재 목포교도소에 무기징역수로 복역하고 있다. 천 판사는 “그 친구가 제게 편지를 줬는데 자신을 본보기로 알려 달라고 했다. 어둠을 동경하는 아무것도 모르는 청소년들에게 바른 선택을 하며, 후회하는 일 없도록 도와달라는 그 친구의 편지를 보면서 더욱 노력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 친구와 제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큰 차이는 없지만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떤 선택을 했느냐일 것이다. 부디 청소년들이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천종호 판사는 독실한 신앙인으로 유명하다. 장로이며 그가 섬기는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로 오래 섬긴 것으로 전해진다. 천 판사의 호통과 애정이 담긴 판결에 의미가 있는 것은 그의 판결과 삶에 신앙인의 향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신간 [천종호 판사의 예수 이야기]를 출간한 이유는 지금까지 자신에게 가장 결정적 영향을 끼친분이 예수이며, 특히 청소년들과 청년들에게 시행착오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고 싶은 마음과, 평신도로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분들도 평강의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과, 비기독교인들도 좀더 쉽게 예수님을 이해할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한다.
그의 저서로는 “천종호 판사의 선, 정의, 법””내가 만난 소년에 대하여””호통 판사 천종호의 변명”등 다수가 있다.
이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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