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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자립개발원·기독신문 공동기획/목회자이중직 문제, 이제는 직시할 때] (6)사회적 목회 차원에서 본 목사의 직업

바른 생각과 신학 가진 목회자 사회적으로 이바지할 길 만들어줘야

마을목회나 복지시설·사회적 기업 운영처럼 교회 울타리를 넘어 사회를 공동체화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며 하나님 나라 가치를 실현해나가는 사회적 목회는 목회자 이중직 문제를 논의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요인이다. 사진은 광주 청사교회가 운영하는 마을기업 ‘들레미’에서 코로나19로 고통 받는 이웃들을 위해 나눔 사업을 펼치는 모습.

사회적 목회

2018년 7월 제1회 ‘사회적 목회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실은 생각지도 못했던 반향이 일어났다. 언론과 목회자 그룹에서 큰 호응이 있었다. 특히 사람들은 ‘사회적 목회’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그 동안 관련해서 딱 떨어지는 용어가 없었다. 그 내용을 ‘미션얼 처치(Missional Church)’로 담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그것에 대한 문제의식 가운데 고민 끝에 만들어낸 용어였는데 사람들이 호응한 것이다.

‘사회적 목회’는 그 동안 한국교회가 해 왔던 대사회적인 사역들을 정리해 본 것이다. 특히 최근에 이르러 더 활발히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서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미션얼 처치가 신학적으로 많은 발전을 했고, 서구사회에서 좋은 사례들이 나오고 있으나 한국의 현실에서는 맞지 않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그렇다고 기존에 우리가 사용해 왔던 사회참여나 사회선교라는 용어로 담기에도 부족한 부분들이 있었다.

그래서 먼저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목회 현장을 4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1)소통형 목회: 카페, 아이들 놀이방, 도서관, 콘서트 2)복지형 목회: 지역아동센터, 방과후학교, 노인돌봄, 복지관 3)지역사회형 목회: 마을목회, 지역운동, 지역사업, NGO 4)사회적 경제형 목회: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등이다. 이렇게 분류를 하고 보니 이미 언급한 그러한 용어들로서는 담기 어려운 부분들이 보였다. 특히 목회현장의 치열함 속에서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만들어 낸 사역들은 여타 다른 나라의 목회현장보다 더 창조적이고 다양했다. 따라서 새로운 정의가 필요했던 것이고, 그 용어가 사회적 목회로 맞아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이라는 용어는 이념의 틀에서 나온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공동체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 이 비슷한 용례는 사회복지, 사회적 경제 등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즉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나눈다는 생각에 기초하였다. 그렇다면 사회적 목회는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목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공동체는 단순히 우리 내부적인 교회를 의미하지 않는다. 아니 교회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이 세상을 모두 아우른다.

이런 의미에서 목사의 사역이라고 할 수 있는 목회는 다시 정의되어야 한다. 목회는 Ministry로서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야 한다. 목회의 지향점을 교회의 성장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로 놓을 때 그 영역을 교회에 가둘 수 없다. 더군다나 목회는 목사의 사역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의 사역으로 넓어져야 한다. 하나님의 사역은 목사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교회라는 공동체에 주어졌다. 주의 몸된 교회로서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품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사역을 그의 몸된 교회가 오늘 이 땅에서 이루어 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는 ‘사회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목사의 이중직을 논한다. 목사의 직업이 단순한 생계에 머물게 할 수는 없다. 거기서 더 나아서 선교적 관점을 더하고, 사회적 관점을 더해야 한다. 목사가 교회의 범위 안에서 사역을 하고, 교회로 하여금 그러한 사회적 목회를 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지원해 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직업을 가져야 한다면, 이왕이면 사회적 목회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하고 싶다. 헌신과 희생, 그리고 바른 생각과 신학을 가진 이들이 사회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준다면, 이중직이 교회와 사회에 도움이 되는 선교적 자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사의 직업

코로나19는 교회에 큰 타격을 주었다. 2년 가까운 시간동안 교인들은 제대로 모이지 못했다. 또 이러한 현실이 언제 끝날지, 역시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가운데 많은 교회들이 어려움에 빠졌다. 특히 작은교회들은 존립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고, 적지 않은 교회들이 폐교회 되거나, 유지는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모이지 않는 교회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목회자들이 ‘직’을 잃었다. 목회지가 사라지고 생계가 막막해졌다. 이제 목회자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목회직을 내려놓고 일반 직업을 찾아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앞으로 목회자 이중직에 대한 논의는 다른 국면을 맞이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현실적으로 목회자들의 이중직을 막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생활이 유지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가정이 위태로운 상황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이제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목회자 이중직에 대해 반대의견을 보였던 큰 교회들 입장에서 이제는 더 이상 뒷바라지할 여건이 안 된다.

문제는 이제 목사의 이중직이 어느 부류에 특정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교회가 무너지고, 너무 많은 목회자들이 직업현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그런데 교단이 모른 척하고 있다.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가장 긴밀한 공동체인 노회나 지방회도 모른 척하고 있다. 회비를 낼 수 있을 때 그들은 공동체의 일원이었으나, 이제는 알아서 나가라는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움은 있지만, 같이 엮일 수는 없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이런 태도는 정말 무책임하다.

결론과 제안

1)목회자의 연대의식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예시 공동체이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담지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이다. 목사의 직업도 그러한 의미에서 이해해야 한다. 교단과 노회, 그리고 지방회 등은 이런 관점에서 목사의 직업을 이해해야 한다. 즉 나눔을 기반으로 해서 서로를 돌보아야 한다. 적어도 여건이 안 되어 현장을 떠나는 목회자가 있다면, 그들의 나아갈 길을 인도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교단은 일자리 나눔의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 목회지가 아니라도 그들의 목사로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고, 이직을 하게 될 경우 그 가능성을 만들어 주어야 하고, 준비하고 있는 목회자들에게는 이직 준비를 세워주어야 한다.

2)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

한국교회는 건물 중심의 목회를 하고 있다. 건물을 지어놓고, 때로는 임대해 놓고 거기를 채우는 목회를 한다. 그러나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공동체이다. 건물을 내려놓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옮겨보면 새로운 가능성이 생긴다.

대부분의 개척교회들은 항상 임대료의 압박을 안고 산다. 교회를 개척할 때면 믿음대로 100명, 50명을 기준으로 해서 장소를 얻는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그 공간에 50명도, 100명도 차지 않는다. 그러면 결국 경제적 압박에 시달린다. 100명이 찰 때 운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고, 예산 운영도 그 때를 기준으로 짜여 있는데 공동체가 형성이 안 되니 결국 월세의 부담을 고스란히 목회자 개인이 지게 되는 경우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결국 목회는 월세 내는 목회가 된다. 그리고 그 목회는 여러 모양으로 왜곡되는 경우들이 많다.

목회에서 건물을 내려놓으면 많은 것이 보인다. 공간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을 내려놓으면 다른 목회가 가능하다. 굳이 사람을 많이 모으겠다고 무리할 필요도 없다. 그래서 목사가 가능한 공간에서, 자신과 공동체를 이루고 비전을 나눌 수 있는 이들과 함께 교회를 이루고, 예배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삶은 교회를 통해서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스스로 벌어서 이루는 것이다. 그러면 목회가 상당히 건강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사람에게 매이지 않게 되고, 건물이나 성도의 숫자에 매이지 않게 된다. 또 이런 목회현장이 많아지면, 그 동안 교회에서 소외되었던 이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이 찾아갈 곳이 생긴다. 기존의 교회에서 상처받고, 가나안 성도가 되어 떠돌던 사람들이 정착할 수 있는 교회가 될 수도 있다.

3)사회적 목회

조성돈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연구소 소장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목사는 좋은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희생과 봉사를 몸에 지닌 이들이고, 사람들과의 소통이 가능하고, 목회의 경험으로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은사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갈 수는 일은 사회적 목회이다.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사회를 공동체화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실현해 나가는 일이다. 이를 통해서 직업과 함께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교회는, 교단과 노회 차원에서 목사들이 할 수 있는 사회적 목회의 가능성을 열어가야 할 것이다. 이게 교회를 공동체로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시대의 필요는 우리로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게 한다. 현재 많은 목회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나서고 있는 현실이다. 그들을 그냥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것은 교회가 할 일은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고, 그 기반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찾아야 한다.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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