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1장 성경에 관하여
[1] 본성의 빛과 창조사역 및 섭리에 하나님의 선하심, 지혜, 그리고 권능이 잘 나타나 있어 아무도 하나님을 모른다고 핑계할 수 없다. 1) 그러나 그것이 구원에 필요한 하나님과 그의 뜻에 관한 지식을 주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2) 그러므로 주께서는 여러 때에 여러 모양으로 교회에 자신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뜻을 선언하시기를 기뻐하셨다. 3) 그 후에는 진리를 더욱 잘 보존하고 전파하시며, 또 육신의 부패와 사탄과 세상의 악에 대항하여 교회가 더욱 더 공고히 서고 더욱 더 위로를 받도록 하기 위하여 동일한 진리를 온전하게 기록하시기를 기뻐하시었다. 4) 그리고 그것이 성경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며 5) 하나님이 이전에 자기 백성에게 자신을 계시하시던 예언의 방법들은 오늘날 중단되었다.6)
1) 롬2:14-15, 1:19, 20, 32; 시19:1-3; 롬1:21.
2) 롬1:21; 고전1:21, 2:13, 14.
3) 히1:1.
4) 잠22:19-21; 눅1:3, 4; 롬15:4; 마4:4, 10; 사8:19, 20.
5) 딤후3:15; 벧후1:19.
6) 히1:1, 2.
[2] "성경" 즉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오늘날 신구약 성경의 모든 책에 포함되어 있는데, 그 책들은 다음과 같다.
※구약 성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 사무엘하, 열왕기상, 열왕기하, 역대기상, 역대기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 이사야, 예레미야, 예레미야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 성경※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 데살로니가후서,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 요한 일서, 요한 이서, 요한 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
이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졌고 믿음과 행위의 규범이 된다.
7) 눅16:29, 31; 엡2:20; 계22:18, 19; 딤후3:16.
[3] 보통 외경이라고 부르는 책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경(正經)에 속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권위도 없으며 다른 어떤 인간적인 저서들보다도 더 인정을 받거나 사용 될 것이 아니다.8)
8) 눅24:27, 44; 롬3:2; 벧후1:21.
[4] 마땅히 믿고 순종해야 할 성경의 권위는 어떤 사람이나 교회의 증언에 의거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 자체이시며, 그 책의 저자이신 하나님에게 전적으로 의거한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의 권위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9)
9) 벧후1:19, 21; 딤후3:16; 요일5:9; 살전2:13.
[5] 우리는 교회의 증거에 의하여 성경을 높이 평가하도록 감동을 받으며 인도함을 받는다.10) 그리고 그 내용의 고귀함, 교리의 효험, 문체의 장엄성, 모든 부분들의 일치성, 목표의 통일성 -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 - 성경이 사람의 구원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드러나게 하는 온전한 발견, 그 외에 비교될 수 없는 많은 우월성 및 그 성경의 전체적인 완전성들은 성경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충분하게 증거해 주는 논증들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무오(無誤)성과 그 신적 권위에 대한 우리의 온전한 납득과 확신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 말씀에 의하여 그리고 그 말씀으로 증거하시는 성령의 내적 사역에 달려 있다.11)
10) 딤전3:15.
11) 요일2:20-27; 요16:13, 14; 고전2:10, 12; 사59:21.
[6] 하나님의 영광, 그리고 사람의 구원과 믿음과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에 관한 하나님의 전체 계획은 성경 안에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성경을 근거로 삼아 바르고 필연적인 결론을 연역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느 때를 막론하고 성령의 새로운 계시나 인간의 유전에 의하여 아무 것도 이 성경에 더할 수 없다.12) 그러나 말씀에 계시된 것을 구원에 유효하도록 이해하려면 성령의 내적 조명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13)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나 교회의 정치에 관하여서는 항상 지켜야 될 말씀의 일반법칙에 따라, 본성의 빛과 그리스도인의 분별에 의해 조정되어야 할 인생의 행동과 사회의 규범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14)
12) 딤후3:15-17; 갈1:8, 9; 살후2:2.
13) 요6:45; 고전2:9-12.
14) 고전14:26, 40; 11:13, 14
[7] 성경에 기록된 모든 내용이 그 자체가 분명하다거나 모든 사람들에게 다같이 명백한 것은 아니다.15) 그러나 구원을 위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나 믿어서 중생에 이르는 데에 필요한 것들은 성경의 여러 곳에 명백하게 제시되어 드러나 있기 때문에 교육을 받은 자들뿐만 아니라, 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까지도 합당한 방법만 사용한다면 그와 같은 것들은 충분하게 이해할 수가 있다.16)
15) 벧후3:16.
16) 시119:105, 130
[8] 옛날 하나님 백성의 언어였던 히브리어 구약 성경과, 신약이 기록될 때까지 많은 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졌던 헬라어 신약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영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독특한 배려와 섭리에 의해 만대에 순수하게 보존되어 왔으므로 신뢰할 만하다.17) 그러므로 교회는 신앙의 모든 논쟁에서 궁극적으로 신구약 성경에 호소해야 된다.18) 그렇지만 이들 원어들은 성경을 읽을 권리와 흥미를 가지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성경을 읽고 탐구하도록 명령을 받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19) 성경은 누구나 읽을 수 있도록 성경이 전수되는 모든 나라의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20)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이 만백성 중에 풍성하게 거하게 되고, 저들도 합당한 방법으로21) 하나님을 예배할 수가 있으며 인내와 성령의 위안으로 소망을 가질 수 있다.22)
17) 마5:18.
18) 사8:20; 행15:15; 요5:39, 46.
19) 요5:39.
20) 고전14:6, 9, 11, 12, 24, 27, 28.
21) 골3:16.
22) 롬15:4.
[9] 성경해석의 정확무오(正確無誤)한 법칙은 성경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어떤 성구의 참되고 온전한 뜻에 관해서 문제가 일어날 때에는, 성경은 항상 그 의미가 여러 가지가 있지 않고 하나 밖에 없으므로, 보다 더 명백하게 말하는 성경의 다른 구절을 살펴서 그 구절을 이해해야 된다.23)
23) 벧후1:20, 21; 행15:15, 16.
[10] 최고의 심판자는 성경 안에서 말씀하시는 성령 이외에 그 누구도 아니다. 따라서 신앙에 관한 모든 논란은 이 최고의 심판자에 의하여 결정이 되어야 하고 제반 회의의 모든 결정, 고대 교부들의 주장들, 사람들의 교리나 사람 개인의 생각들을 검토할 때에 이 최고의 심판자에 의하여 검토되어야 하며, 그의 판결에 전적으로 복종해야 한다.24)
24) 마22:29, 31; 엡2:20; 행28:25.
제2장 성 삼위일체에 관하여
[1] 살아 계시고25) 참되신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26) 그는 무한하시고 완전하시고27) 지극히 순결하신 영이시며28)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고29) 육신이나 지체나30) 성정(性情)이 없으시다.31) 또 그는 불변하시고32) 무한하시고33) 영원하시고34) 인간이 측량할 수 없으며35) 전능하시고36) 지극히 지혜로우시고37) 지극히 거룩하시고38) 지극히 자유로우시고39) 지극히 절대적이시다.40) 그는 불변하시며 가장 의로우신 자신의 뜻과 계획에 따라 모든 것을 하시되41)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신다.42) 그는 사랑이 지극하시고43)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고, 오래 참으시고 선과 진리가 풍성하시고, 죄악과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44) 부지런히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신다.45) 또한 그의 심판은 가장 공의로우시고 엄격하시며46) 그는 모든 죄를 미워하시므로47) 죄 있는 자를 결단코 면죄하지 않으신다.48)
25) 신6:4; 고전8:4, 6.
26) 살전1:9; 렘10:10.
27) 욥11:7-9, 26:14.
28) 요4:24.
29) 딤전1:17.
30) 신4:15, 16; 요4:24; 눅24:39.
31) 행14:11, 15.
32) 약1:17; 말3:6.
33) 왕상8:27; 렘23:23, 24.
34) 시90:2; 딤전1:17.
35) 시145:3.
36) 창17:1; 계4:8.
37) 롬16:27.
38) 사6:3; 계4:8.
39) 시115:3.
40) 출3:14.
41) 엡1:11.
42) 잠16:4; 롬11:36.
43) 요일4:8, 16.
44) 출34:6, 7.
45) 히11:6.
46) 느9:32, 33.
47) 시5:5, 6.
48) 나1:2, 3; 출34:7.
[2]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시며,49) 영광과50) 선하심과51) 복되심을52) 스스로 가지고 계시므로, 홀로 자신 안에서 그리고 자신에 대하여 자족하신다. 그 지으신 피조물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며53) 피조물에게서 영광도 찾지도 아니하시고54) 오직 피조물 안에서, 피조물로 인해서, 피조물에게, 그리고 피조물 위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뿐이시다. 하나님은 홀로 모든 존재의 근원이 되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나오고 그로 말미암고 그에게로 돌아간다.55) 그리고 그는 절대적인 주권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되, 만물에 의해서, 만물을 위하여, 만물 위에 자신이 기뻐하시는 바를 무엇이든지 행하신다.56) 하나님의 목전에는 모든 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고,57) 하나님의 지식은 무한하시고 무오하시며, 피조물에게 의존함이 없으시다.58) 그에게는 우연한 것이나 불확실한 것이59) 아무 것도 없다. 그는 자신의 모든 계획과 모든 사역과 모든 명령에 있어 지극히 거룩하시다.60) 천사들이나 사람들이나 그 외의 모든 피조물은 그가 기뻐 요구하시는 모든 예배와 봉사와 순종을 하나님께만 돌리는 것이 마땅하다.61)
49) 요5:26.
50) 행7:2.
51) 시119:68.
52) 딤전6:15; 롬9:5.
53) 행17:24, 25.
54) 욥22:2, 3.
55) 롬11:36.
56) 계4:11; 딤전6:15; 단4:25, 35.
57) 히4:13.
58) 시147:5.
59) 행15:18; 겔11:5.
60) 시145:17; 롬7:12.
61) 계5:12-14.
[3] 단일한 신격(神格) 안에 본체(本體)와 능력과 영원성이 동일하신 세 격위(格位)가 있으니,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시다.62) 성부는 아무 것에도 속하지 않으시고, 출생하시거나 유출된 분이 아니시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신 바 되셨으며,63) 성령은 영원히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64)
62) 요일5:7; 마3:16, 17, 28:19; 고후13:13.
63) 요1:14, 18.
64) 갈4:6.
제3장 하나님의 영원하신 작정에 관하여
[1] 하나님은 장차 될 모든 일을 영원 전부터 작정하셨는데, 이는 그의 뜻에 가장 지혜롭고 거룩한 계획대로 하신 것이다.65), 그러나 그 일로 인하여서 하나님이 죄의 조성자가 되시거나66) 사람들의 의지를 억제하심도 없으며, 자연법칙의 자유나 우연성을 파훼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성립시키신다.67)
65) 엡1:11; 롬11:33; 히6:17; 롬9:15, 18.
66) 약1:13, 17; 요일1:5.
67) 행2:23; 마17:12; 행4:27, 28; 요19:11; 잠16:33.
[2] 하나님은 비록 장차 어떤 환경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날 것을 다 아시지만68) 예지하시는 장래일이나 예지하시는 지식을 따라 미래의 것을 작정(作定)하신 것은 아니다.69)
68) 행15:18; 삼상23:11, 12; 마11:21, 23.
69) 롬9:11, 13, 16, 18.
[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어떤 사람과 천사들은 영생을 얻도록 예정하시고,70) 다른 사람과 천사들은 영원한 죽음에 이르도록 선정(選定)하셨다.71)
70) 딤전5:21; 마25:41.
71) 롬9:22, 23; 엡1:5, 6; 잠16:4.
[4] 이들 천사들과 사람들에 대한 예정은 개별적으로 그리고 불변적으로 계획되어 있으며 이들의 숫자도 확실하고 분명하기에 증감이 될 수 없다.72)
72) 딤후2:19; 요13:18, 6:37-39, 10:14-16, 27-29.
[5]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얻도록 예정된 사람들을 창세(創世) 전에, 자신의 영원하시고 불변하신 목적과, 오묘한 계획과, 선하시고 기쁘신 뜻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에 이르도록 선택하시었다.73) 이렇게 선택하실 때 그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원인이나 조건으로 저들에게 있을 장래의 믿음이나 선행, 오래 참는 일, 혹은 그 외의 다른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예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74) 자신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사랑으로 하셨으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은혜를 찬양하도록 하려는 데에 있다.75)
73) 엡1:4, 9, 11; 롬8:30; 딤후1:9; 살전5:9.
74) 롬9:11, 13, 16; 엡1:4, 9.
75) 엡1:6, 12.
[6]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로 영광에 이르도록 예정하신 것처럼, 그의 영원하시고 지극히 자유로우신 뜻을 따라 그들로 하여금 구원에 이르게 하는 모든 방편들도 예정하시었다.76) 그러므로 선택된 사람들은 아담 안에서 타락하였으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속함을 받는 과정에 있어서,77) 때가 되어 역사(役事)하시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해 그리스도를 믿도록 효과적으로 부르심을 받으며, 의롭다함을 받고, 양자됨을 얻고, 성화(聖化)가 되고78)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그의 능력으로 보살핌을 받는다.79) 그러나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에게는 이와 같은 일이 없다.80)
76) 벧전1:2; 엡1:4, 5, 2:10; 살후2:13.
77) 살전5:9, 10; 딛2:14.
78) 롬8:30, 엡1:5; 살후2:13.
79) 벧전1:5.
80) 요17:9; 롬8:47; 요6:64, 65, 8:47, 10:26; 요일2:19.
[7] 하나님께서는 택함 받지 못한 나머지 사람들을 내버려 두어 그들의 죄 때문에 치욕의 형벌과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도록 작정하셨으니, 그 결과는 그의 영광스러운 공의에 대한 칭송이다. 그가 이렇게 하심은 은혜를 베풀 수도 있고 아니 베풀 수도 있는 그의 측량할 수 없는 임의적 계획대로 하신 것인데, 이는 피조물에 대한 그의 주권적 능력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다.81)
81) 마11:25, 26; 롬9:17, 18, 21, 22; 딤후2:19, 20; 유1:4; 벧전2:8.
[8] 지극히 신비한 예정의 교리는 특별히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82)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유의하여 순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효과적으로 부름 받은 사실과 자신이 영원한 선택을 받았음을 확신케 할 것이다.83) 그렇게 되면 이 교리로 인하여 신실하게 복음에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외하며 공경하게 되고 또 겸손, 근면 및 풍성한 위안을 받게 된다.84)
82) 롬9:20, 11:33; 신29:29.
83) 벧후1:10; 엡1:6; 롬11:33.
84) 롬11:5, 6, 20; 벧후1:10; 롬8:33; 눅10:20.
제4장 창조에 관하여
[1] 태초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는85) 자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지혜와 선하신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86)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을 엿새 동안에 무(無)로부터 창조하시되, 다 매우 선하게 창조하시기를 기뻐하시었다.87)
85) 히1:2; 요1:2, 3; 창1:2; 욥26:13, 33:4.
86) 롬1:20; 렘10:12; 시104:24, 33:5, 6.
87) 창 1; 히11:3; 골1:16; 행17:24.
[2] 하나님께서 다른 모든 피조물들을 지으신 후에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되88) 이성과 죽지 않는 영혼을 지닌 존재로 지으셨고89) 자신의 형상을 따라90) 지식과, 의와 참된 거룩함을 갖도록 하시었다. 또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을 기록하셨으며,91) 그 율법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도 갖게 하시었다.92)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로 하여금 그들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하시도록 하시었으며 이러한 의지의 자유성은 변할 수가 있는 것이므로 범죄의 가능성 아래 있었다.93) 그들은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 외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는데 저들이 이 명령을 지키는 동안에만 하나님과 교통하는 복된 관계를 누렸고, 피조물들을 다스렸다.
88) 창1:27.
89) 창2:7; 전12:7; 눅23:43; 마10:28.
90) 창1:26; 골3:10; 엡4:24.
91) 롬2:14, 15.
92) 전7:29.
93) 창3:6; 전7:29.
94) 창2:17, 3:8-11, 23, 1:26, 28.
제5장 섭리에 관하여
[1] 만물의 위대하신 창조주이신 하나님은 자신의 무오하신 예지와 자유롭고 불변하시는 자신의 뜻의 계획에 따라서, 또 자신의 지혜와 권세와 공의, 선하심과 긍휼의 영광을 찬송케 하시려고 자신의 지극하신 지혜와 거룩하신 섭리(攝理)로 가장 큰 것에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과 그들의 행위, 생각, 기타 모든 것을 보호하시며 지도하시고, 처리하시며 다스리신다.
95) 행15:18; 시94:8-11.
96) 엡1:11; 시33:10-11.
97) 사63:14; 엡3:10; 롬9:17; 창45:7; 시145:7.
98) 잠15:3; 시104:24, 145:17.
99) 마10:29-31.
100) 히1:3.
101) 단4:34, 35; 시135:6; 행17:25, 26, 28; 욥39, 41.
[2] 제일원인(第一原因)이신 하나님의 예지와 작정대로 만사가 변동없이 정확무오하게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것들이 이루어지는 방편은 제이원인(第二原因)의 특성에 따라서 만사가 필연적으로, 자유롭게, 또는 우연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이렇게 되는 것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섭리이다.
102) 행2:23; 창8:22; 렘31:35; 출21:13; 신19:5; 왕상22:28, 34; 사10:6, 7.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일반 섭리 과정에서 여러 가지의 방편들을 사용하나, 오히려 그와 같은 방편 없이, 방편을 초월해서, 또는 역행하여서 그의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자유롭게 행사하기도 하신다.
103) 행27:31, 34; 사55:10, 11; 호2:21, 22.
104) 호1:7; 마4:4; 욥34:10.
105) 롬4:19-21.
106) 왕하6:6; 단3:27.
[3]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과 헤아릴 수 없는 지혜와 무한히 선하심은, 그의 섭리에 잘 나타나 있다. 섭리는 최초의 타락과 천사들 및 사람들의 다른 모든 죄에까지 미치니 단순히 허락하심에 그치지 않고 그의 거룩한 목적을 위하여 큰 지혜와 권능으로 허락의 한계를 정하시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정돈하시고 관할하시며 다스리신다. 그러나 죄악성은 피조물에게서만 나오는 것이요,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니, 그는 가장 거룩하시며 의로우셔서 죄의 조성자(造成者)나 시인자(是認者)가 아니시며 또 그러실 수도 없으시다.
107) 제3장과 제5장의 1, 2 3 인용성구들을 참조
108) 롬11:32-34; 삼하24:1; 대상21:1; 왕상22:22, 23; 대상10:4, 13, 14; 삼하16:10; 행2:23, 4:27, 28.
109) 창50:20
110) 왕하19:28, 사10:5-7, 12, 15
111) 약1:13, 14, 17; 요일2:16; 시50:21.
[4] 가장 지혜로우시고 의로우시며,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얼마동안 자신의 자녀들로 여러 가지 시험과 그들 마음의 부패성(腐敗性)에 내버려두기도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전날에 범했던 그들의 죄를 징계하시기 위함이거나, 그들로 하여금 그들 속에 잠재해 있는 부패성(腐敗性)의 힘이 얼마나 큰 가를 발견케 하려는 것과,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심령의 거짓됨을 알게 하여 겸손케 하려는 것이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계속 의지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그들로 하여금 경성(警醒)하여 미래의 범죄를 방지케 하려는 것이며 기타 여러 가지 옳고 거룩한 목적을 위한 것이다.
112) 대하32:25, 26, 31; 삼하24:1.
113) 고후12:7-9; 시73:, 77:1, 10, 12; 막14:66; 요21:15-17.
[5] 의로우신 재판장이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악하고 경건치 않은 자들에게 대하여는, 전에 지은 그들의 죄악을 벌하시는 의미에서 그들의 눈이 어두워지게 하시고 또 마음이 완악(頑惡)하게 하신다. 그들에게는 밝히 깨달아 그 심령이 새로워지도록 되는 은혜를 주시지 않으며, 때로는 이미 저들이 소유했던 은사까지도 거두시고, 저들로 그들 자신의 부패성이 죄를 범할 기회에 그들을 내버려두신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은 저들을 자신들의 정욕과 세상의 시험과 사단의 권세에 내어 주시기도 하신다. 이로써 저들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을 온화케 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여러 가지 방편 아래서도 그들이 자기 자신을 강퍅케 하는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
114) 롬1:24, 26, 28, 11:7, 8.
115) 신29:4.
116) 마13:12, 25:29.
117) 신2:30; 왕하8:12, 13.
118) 시81:11, 12; 살후2:10-12.
119) 출7:3, 8:15, 32; 고후2:15, 16; 사8:14; 벧전2:7, 8; 사6:9, 10; 행28:26, 27.
[6] 하나님의 섭리는 일반적으로는 모든 피조물에게 미치지만, 그 중에도 가장 특별한 방법으로 교회를 보호하시고 만사가 합력하여 교회의 선을 이루도록 하신다.
120) 암9:8, 9; 롬8:28.
제6장 사람의 타락과 죄와 형벌에 관하여
[1] 인류의 시조(始祖) 아담과 하와는 사단의 간계와 유혹을 받아 금지된 실과를 먹음으로 범죄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지혜로우시고 거룩하신 뜻을 따라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다스리실 목적으로 그들의 이 같은 범죄를 허용하셨다. 이렇게 경륜(經綸)하심이 그의 기쁘신 뜻이었다.
121) 창3:13; 고후11:3; 롬11:32.
[2] 이 범죄로 말미암아 그들은 본래 가졌던 의(義)를 잃었고 하나님과의 교제도 끊어졌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망에 이르게 되었고 영과 육의 모든 기능과 여러 분야들이 전적으로 더러워졌다.
122) 창3:6-8; 전7:29; 롬3:23.
123) 창2:17; 엡2:1; 롬5:12.
124) 창6:5; 렘17:9; 롬3:10-18, 8:6-8; 시58:1-5.
[3] 그들은 인류의 뿌리인 고로 그들의 모든 후손들에게 그 첫 범죄의 죄책(
Z k)이 전가(轉嫁)되었고, 죄로 인한 그 동일한 죽음과 부패한 성품이 대대로 유전되어 내려온다. 그렇게 되는 것은, 그 후손들이 그들에게서 보통 생육법으로 출생되기 때문이다.
125) 창1:27-28, 2:16-17; 행17:26; 창3:16-17; 롬5:12, 15-19; 고전15:21, 22, 45, 49.
126) 시51:5; 창5:3; 요3:6; 롬3:10-18.
[4] 이러한 근본적인 부패성(腐敗性)으로 인하여, 인간은 모든 선을 전적으로 배격하고, 선을 행함에 무능해지며, 모든 선에 역행하고, 모든 악을 전적으로 좇게 된다. 여기서 모든 자범죄(自犯罪)가 나오게 된다.
127) 롬5:6, 8:7; 요3:6; 롬7:18; 창8:21.
128) 창6:5, 8:21; 롬3:10-12.
129) 약1:14, 15; 엡2:2, 3; 마15:19.
[5] 이러한 부패(腐敗)한 본성(本性)은 중생(重生)한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에 사는 동안, 그들 속에 남아 있다. 그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되고 소멸되어 가지만, 그 부패성 자체와 거기서 나오는 행위들은 모두 틀림없는 죄악이다.
130) 요일1:8, 10; 롬7:14, 17, 18, 23; 약3:2; 잠20:9; 전7:20.
131) 롬7:5, 7, 8, 25; 갈5:17.
[6] 모든 죄는 원죄(原罪)이든 자범죄(自犯罪)이든 의로우신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한 것이며 그에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죄는 본질적으로 죄인에게 죄책을 가져온다. 그리하여 죄인은 하나님의 진노와 율법의 저주 아래 죽을 수 밖에 없고 영적으로, 현세적으로 비참한 중에 또 영원히 비참한 중에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132) 요일3:4.
133) 롬2:15, 3:9, 19.
134) 엡2:3; 롬5:12
135) 갈3:10; 살후1:9 롬1:21-28; 레26:14-.
136) 롬6:23.
137) 엡4:18; 신28:15-.
138) 마25:41
139) 창2:17; 롬6:23
제7장 사람과 맺으신 하나님의 언약에 관하여
[1] 하나님과 피조물과의 거리가 너무나 커서 비록 이성적 피조물들일지라도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에게 오직 순종할 의무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상급을 자신들의 의무를 수행한 결과로 얻을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서 스스로 자기를 낮추심에 의해서만 그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언약의 방법으로 표현하시기를 기뻐하셨다.
140) 사40:13-27; 욥9:32, 33; 삼상2:35; 시113:5, 6, 100:2, 3; 욥22:1, 3, 35:7, 8; 눅17:10; 행17:24, 25.
[2] 사람과 맺은 최초의 언약(言約)은 행위언약(行爲言約)이었으니 이 언약에 따라서 완전하고, 자발적인 순종을 조건으로 하여 아담과 아담이 대표하는 그의 후손들에게 생명이 약속되었다.
141) 창2:16, 17; 갈3:10; 호6:7; 롬5:12, 19; 고전15:22, 47.
142) 갈3:12.
143) 롬10:5, 5:12-20.
[3] 사람이 타락함으로 행위언약으로는 생명에 이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기쁘신 뜻대로 은혜언약이라고 부르는 제 2의 언약을 맺으셨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과 구원을 거저 제공하시어 그들이 구원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믿을 것을 그들에게 요구하시고, 영생을 주시기로 예정된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들로 하여금 자원하여 믿도록 해 주시었다.
144) 갈3:21; 롬8:3, 3:20, 21; 창3:15; 사42:6.
145) 막16:15, 16; 요3:16; 롬10:6, 9; 갈3:11.
146) 겔36:26, 27; 요6:37, 44, 45; 눅11:13; 갈3:14.
[4] 이 은혜언약은 유언의 내용으로 성경에 해설되어 있다. 이는 유언자(遺言者)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유언으로 증여(贈與)된 영원한 기업과 그 기업에 속한 모든 것을 포괄할 내용이다.
147) 히9:15-17, 7:22; 눅22:20; 고전11:25.
[5] 은혜언약은 율법 시대와 복음시대에 서로 다르게 집행되었다. 율법시대에 유대 민족에게 실시된 것은 약속, 예언, 제사, 할례, 유월절 어린양, 기타 다른 모형들과 규례(規例)들이다. 이것들은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豫表)로서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 시대의 택한 백성을 약속된 메시아 신앙으로 육성하기에 충분하였고 또 유효하였다. 이 메시아에 의하여 유대 백성들은 온전한 사죄와 온전한 구원을 받았다. 이것을 가리켜 구약이라고 부른다.
148) 고후3:6-9.
149) 히8, 9, 10; 롬4:11; 골2:11, 12; 고전5:7.
150) 고전10:1-4; 히11:13; 요8:56.
151) 갈3:7-9, 14.
[6] 실체(實體)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신 복음시대에는 언약을 시행하는 규례로 설교와 성례(세례와 성찬) 뿐이다. 이 규례의 수가 적고, 그 사역양상이 비교적 단순하고, 외관상 화려하지도 않으나 이 언약은 더욱 충만하게, 또 명확하게 영적 효력을 모든 나라(유대인과 이방인)에 나타낸다. 이것을 신약이라고 부른다. 이처럼 두 시대의 계시(啓示)형태는 서로 다르지만 그 언약들이 실질적으로 하나요 동일하다.
152) 골2:17.
153) 마28:19, 20; 고전11:23-25.
154) 히12:22-27; 렘31:33-34.
155) 마28:19; 엡2:15-19.
156) 눅22:20.
157) 갈3:14, 16; 행15:11; 롬3:21-23, 30; 시32:1; 롬4:3, 6, 16, 17, 23, 24; 히13:8.
제8장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에 관하여
[1] 하나님께서는 그 영원하신 뜻을 따라 독생자 주 예수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로 세우기를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과 교회의 머리와 구주가 되시고 만물의 후사와 세상의 심판자가 되셨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에 그에게 씨가 되는 백성을 주셨다. 때가 이르매 그 백성은 그로 말미암아 속량되고, 부르심을 받고, 의롭다함을 받고, 성화되고 영화롭게 되도록 하시었다.
158) 사42:1; 벧전1:19, 20; 요3:16; 딤전2:5.
159) 행3:22.
160) 히5:5, 6.
161) 시2:6; 눅1:33.
162) 엡5:23.
163) 히1:2.
164) 행17:31.
165) 요17:6; 시22:30; 사53:10.
166) 딤전2:6; 사55:4, 5; 고전1:30.
[2] 하나님의 아들은 삼위일체 중의 제 2위로서 아버지와 동일한 신(神)의 본체(本體)이시니, 영원하신 하나님 자신이시다. 때가 차매 인성(人性)을 취하여 사람이 되시고 인간의 모든 본질적 속성과 공통적인 연약성을 그대로 받으셨다. 그러나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죄성은 없이 동정녀 마리아 몸에 그 분(마리아)의 체질로 잉태되셨다. 그러므로 완전하고도 구별된 신성(神性)과 인성이 나뉠 수없이 한 인격으로 결합되셨다. 그 결합은 각기 성품의 변동도 아니고 합성도 아니며, 혼동도 아니다. 그 인격이 바로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데, 한 분 그리스도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유일(唯一)하신 중보자이시다.
167) 요1:1, 14; 요일5:20; 빌2:6; 갈4:4.
168) 히2:14, 16, 17, 4:15.
169) 눅1:27, 31, 35; 갈4:4.
170) 눅1:35; 골2:9; 롬9:5; 벧전3:16; 딤전3:16.
171) 롬1:3, 4; 딤전2:5.
[3] 이와 같이 신성과 결합된 인성을 소유하신 주 예수께서는 성별(聖別)되셨고, 또 성령을 한량없이 받으시어 그의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영적 보화를 가지셨고,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뜻대로 모든 은혜가 충만하셨다. 그렇게 하신 목적은 그가 거룩하시고, 흠이 없으시고, 순결하시며,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셔서, 한 중보자와 보증인의 직무 실행에 철저한 자격을 갖추시려는 것이었다. 그 직무로 말하면, 그가 스스로 취한 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그를 세우셔서, 모든 능력과 심판을 그의 수중에 맡기시고 그로 하여금 그것을 수행하도록 명하신 것이다.
172) 시45:7; 요3:34.
173) 골2:3.
174) 골1:19.
175) 히7:26; 요1:14.
176) 행10:38; 히12:24, 7:22.
177) 히5:4, 5.
178) 요5:22, 27; 마28:18, 행2:36.
[4] 주 예수께서는 이 직분을 매우 기쁘게 받으셨으며 그는 이 직분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율법 아래 나시었고, 그것을 완전하게 지키시었으며, 영혼의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견디시었고, 육신으로 가장 괴로운 고난을 당하신 후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장사되어 사망의 권세 아래 머물러 계셨으나 썩음을 당치 아니하셨다. 사흘 후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되, 고난을 당하신 그 동일한 육신으로, 하늘에 오르시었으며, 그곳에서 그의 아버지의 오른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를 하신다. 그리고 그는 이 세상 끝 날에 사람들과 천사들을 심판하려 다시 오신다.
179) 시40:7, 8; 히10:5-10; 요10:18; 빌2:8.
180) 갈4:4.
181) 마3:15, 5:17.
182) 마26:37, 38; 눅22:44; 마27:46.
183) 마26, 27.
184) 빌2:8.
185) 행2:23, 24, 27, 13:37; 롬6:9.
186) 고전15:3-5.
187) 요20:25-27.
188) 막16:19.
189) 롬8:34; 히9:24, 7:25.
190) 롬14:9, 10, 10:42; 마13:40-42; 유1:6; 벧후2:4.
[5] 주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순종과 영원하신 영을 통하여 단번에 자신을 제물로 하나님에게 드리신 희생으로써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를 충분히 만족시키시고 성부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화목을 이루셨을 뿐만 아니라 천국의 영원한 유업을 값 주고 사시었다.
191) 롬5:19; 히9:14, 16, 10:14; 엡5:2; 롬3:25, 26.
192) 단9:24, 26; 골1:16, 20; 엡1:11, 14; 요17:2; 히9:12, 15.
[6]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까지는 그의 구속(救贖)의 사역이 실제적으로 수행되지 아니하였으나 구속의 효력과 효험과 은택이 세상의 시초로부터 만대에 계속적으로 약속, 예표, 제사에 의하여 택한 백성들에게 전달되어 내려왔다. 따라서 성육(成肉)전에는 그것들로 말미암아 예수께서 뱀의 머리를 상케 하는 여인의 후손이라는 것과 창세전부터 죽임 당하신 어린양이시라는 사실이 계시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다.
193) 갈4:4, 5; 창3:15; 계13:8; 히13:8.
[6] 그리스도께서는 그 중보 사역에 있어서 두 성품, 곧 신성과 인성을 따라 행하시는데 각기 성품의 고유(固有)한 기능으로 행하신다. 그러나 때때로 성경에서 한 성품의 고유한 것들이 다른 성품으로 지칭된 몸에 나타나는데, 그것은 두 성품이 한 인격으로 단일화되어 계시기 때문이다.
194) 요3:13; 행20:28; 요일3:16.
[7] 그리스도께서는 값을 치르시고 속량(贖良)하신 모든 사람들에게 그 속량의 은혜를 확실히 그리고 효과적으로 베푸시며 전달하신다. 그 전달사역은 하나님 우편에서 그들을 위하여 대신 간구하시는 그의 기도와, 말씀에 의한 구원의 비밀(복음) 계시하심, 그들로 하여금 믿고 순종토록 하시는 성령의 효과적인 설복, 말씀과 성령으로 그들의 심령을 다스리심, 그리고 그의 전능하신 능력과 지혜로 그들의 모든 원수들을 정복하시는 일인데, 그의 오묘하시고 측량할 수 없는 경륜에 일치하는 방법으로 대적들을 정복하신다.
195) 요6:37, 39, 10:15, 16, 27, 28.
196) 요일2:1, 2; 롬8:34.
197) 요15:13, 15; 엡1:7-9; 요17:6.
198) 요14:16; 히12:2; 고후4:13; 롬8:9, 14, 15:18, 19; 요17:17.
199) 시110:1; 고전15:25, 26; 말4:2, 3; 골2:15.
제9장 자유 의지에 관하여
[1] 하나님께서 인간의 의지(意志)에 본래 자유를 주셨다. 그러므로 그 의지는 선이나 악을 행하도록 외적(外的)으로 강요되지 않으며, 혹은 내적(內的)으로 어떤 절대 필연적인 본성 때문에 선이나 악을 행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200) 마17:12; 약1:14; 신30:19; 요5:40.
[2] 아담은 그의 타락 이전 무죄(無罪) 상태에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하실 만한 선을 원하거나 행할 자유와 능력을 가졌었다. 그렇지만 그 본래의 무죄 상태에서 타락할 가능성도 있었다.
201) 전7:29; 창1:26.
202) 창2:16, 17, 3:6.
[3]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구원에 이를 신령한 선을 소원할 의지력(意志力)을 다 잃어버렸다. 그러므로 그 후손들도 중생하지 못한 자연인 그대로는 전적으로 그런 신령한 선은 싫어하고, 죄로 죽은 자가 되었으니, 그 자신의 힘으로는 회개할 수 없고 또 회개할 준비도 못한다.
203) 롬5:6, 8:7; 요15:5.
204) 롬3:10, 12.
205) 엡2:1, 5; 골2:13
206) 요6:44, 65; 엡2:2-5; 고전2:14; 딛3:3-5.
[4] 하나님께서 죄인을 회개시켜 은혜의 자리로 옮기실 때에 그를 그의 본연적인 죄의 결박에서 해방시키시고, 그로 하여금 오직 은혜로만 신령한 선을 원하게 하시며 또 행하게도 하신다. 그러나 그는 그의 남아 있는 부패성 때문에 선한 것만 완전히 소원하게 되지 않고 악한 것을 원하기도 한다.
207) 골1:13; 요8:34, 36.
208) 빌2:13; 롬6:18, 22.
209) 갈5:17; 롬7:15, 18, 19, 21, 23.
[5] 사람의 의지(意志)가 선한 것만을 완전히 또는 변동 없이 자유롭게 원하게 되기는 그가 장차 영화롭게 된 상태에 이르러서만 실현된다.
210) 엡4:13; 히12:23; 요일3:2; 유1:24.
제10장 효과적인 소명에 관하여
[1] 하나님께서는 그 기쁘신 뜻을 따라 영생 주시기로 예정하신 모든 사람들, 그들만을 다음과 같이 부르신다. 그의 정하신 적당한 시기에 효과적으로 부르시되, 그들의 본성화(本性化)되어 있는 죄와 사망의 처지에서 그의 말씀과 성령으로 부르시어, 그리스도를 말미암은 은혜와 구원에 이르도록 하신다. 이렇게 부르실 때 그들의 마음을 영적으로 밝혀, 구원에 관하여 깨우쳐 하나님의 사리(事理)들을 깨닫게 하시며, 그들의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시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며, 그들의 의지(意志)를 새롭게 하여서 전능하신 능력에 의하여 그들을 선한 방향으로 정착(定着)시키시며, 또한 효과적으로 그들을 이끌어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게 하신다. 그들은 그의 은혜에 의하여 자원하여 가장 자유롭게 나아오게 된다.
211) 롬8:30, 11:7, 8; 엡1:10, 11.
212) 살후2:13, 14; 고후3:3, 6.
213) 롬8:2-9; 엡2:1-9; 딤후1:9, 10.
214) 행26:18; 고전2:10, 12; 엡1:17, 18.
215) 겔36:27.
216) 겔11:19; 빌2:13; 신30:6; 겔36:27.
217) 엡1:19; 요6:44, 45.
218) 아1:4; 시110:3; 요6:37; 롬6:16-18.
[2] 효과적(效果的)인 부르심은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특수 은총으로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있는 어떤 조건을 미리 내다보신 데서 생긴 것이 아니며, 인간은 성령에 의하여 소생되고 새롭게 되어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그 전달된 은혜를 받는데 이르기까지 전적으로 피동적(被動的)일 뿐이다.
219) 딤후1:9; 딛3:4, 5; 엡2:4, 5, 8, 9; 롬9:11.
220) 고전2:14; 롬8:7; 엡2:5.
221) 요6:37; 겔36:27; 요5:25.
[3] 택함 받은 영아(嬰兒)가 영아기에 죽을 경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에 의하여 중생 하게 되어 구원을 받는다. 이 경우에 중생케 하시는 성령께서 언제, 어디서,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시든지 그의 임의로 하신다. 그 밖에도 택함을 받기는 하였지만 하나님 말씀의 사역에 의한 외적 부르심을 받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222) 눅18:16; 행2:38, 39; 요3:3, 5; 요일5:12; 롬8:9.
223) 요3:8.
224) 요일5:12; 행4:12.
[4] 택함을 받지 못한 자들은 비록 말씀의 전도를 통하여 부름을 받고, 성령의 일반적 역사(도덕적 감화)를 받았을지라도 그리스도에게 참되이 나아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구원을 받지 못한다. 더욱이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은 그 어떠한 방법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한다. 설령 그들이 일반 계시로 인한 지혜와 그들의 고백하는 어떤 종교의 율례(律例)대로 부지런히 실천했다 하더라도 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다. 그런 사람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해롭고 또 가증(可憎)하다.
225) 마22:14.
226) 마7:22, 13:20, 21; 히6:4, 5.
227) 요6:64-66, 8:24.
228) 행4:12; 요14:6; 엡2:12; 요4:22; 17:13.
229) 요이 1:9-11; 고전16:22; 갈1:6-8.
제11장 칭의에 관하여
[1] 하나님께서는 효과적으로 부르신 자들을 값없이 의롭다고 간주하신다. 이 칭의(稱義)의 근거는, 그들 속에 의(義)를 주입(注入)하심이 아니라 그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더 나아가 그들의 인격을 의롭다고 간주하시어 기쁘게 받아 주심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그들 안에 무엇이 이루어졌거나 그들이 무엇을 성취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다만 그리스도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믿음 자체나 믿음의 행위나 기타 신앙적 순종을 그들의 의라고 불러 주심이 아니고 다만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성취하신 의(義)와 및 그의 만족한 속상(贖償)을 그들에게 전가시키심이다. 그들은 그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의를 받아 그에 의지할 뿐이다. 이 믿음도 그들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다.
230) 롬8:30, 3:24.
231) 롬4:5-8; 고후5:19-21; 롬3:22, 24, 25, 28; 딛3:5, 7; 엡1:7; 렘23:6; 고전1:30, 31; 롬5:17-19.
232) 행10:44; 갈2:16; 빌3:9; 행13:38, 39; 엡2:7, 8.
[2] 이와 같이 그리스도와 그의 의를 받아들여 의지함에 있어서 믿음은 칭의(稱義)의 유일한 방편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칭의 된 그 사람 안에 고립(孤立)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원 성취에 필요한 모든 다른 은혜들을 믿음의 열매로 동반하니, 이처럼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니고 사랑으로 역사한다.
233) 요1:12; 롬3:28, 5:1.
234) 약2:17, 22, 26; 갈5:6.
[3]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순종과 죽으심으로 칭의 되는 모든 자들의 죄값을 충분히 지불하셨다. 그 결과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합당하고 참되고 충분한 보상으로 만족시키셨다. 성부께서는 값없이 그리스도를 그들에게 주셨고, 또 그리스도의 순종과 그의 만족한 속상(贖償)을 값없이 그들 대신으로 수납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들 안에 있는 무엇 때문이 아니므로 그들의 칭의(稱義)는 거저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엄정하신 공의와 그의 풍성하신 은혜는 죄인들이 받은 칭의로 인하여 영광을 나타내신 것이다.
235) 롬5:8-10, 19; 딤전2:5, 6; 히10:10, 14; 단9:24, 26; 사53:4-6, 10-12.
236) 롬8:32.
237) 고후5:21; 마3:17; 엡5:2.
238) 롬3:24; 엡1:7, 4.
239) 롬3:26; 엡2:7.
[4]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있어서 성부 하나님은 영원 전에 모든 택한 자들을 의롭다 하시기로 예정하셨고, 그리스도는 때가 차매 그들의 죄를 인하여 죽으셨다가 그들의 칭의를 위하여 부활하셨다. 그렇지만 그들이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성령께서 때를 따라 실제로 그리스도의 은혜를 그들에게 적용시키실 때에 비로소 실현된다.
240) 갈3:8; 벧전1:2, 19, 20; 롬8:30.
241) 갈4:4; 딤전2:6; 롬4:25.
242) 골1:21, 22; 갈2:16; 딛3:4-7.
[5] 하나님은 의롭다 하심을 입은 자들의 죄를 계속해서 용서해 주신다. 그들이 범죄 한다 해도 칭의의 상태에서 떨어지게 되는 일은 없다. 그러나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부성적(父性的)인 진노 아래 떨어지게 된다. 그런 때에 그들이 자신을 낮추고 죄를 자백하며 용서를 빌고 믿음과 회개(悔改)를 새롭게 하기까지는 하나님의 얼굴빛을 자기들에게로 회복하지 못한다.
243) 마6:12; 요일1:7, 9, 2:1, 2.
244) 눅22:32; 요10:28; 히10:14.
245) 시89:31-33, 51:7-12, 32:5; 마26:75; 고전11:30, 32; 눅1:20.
[6] 구약시대 성도들의 칭의는 모든 면에 있어서 신약시대 성도들의 칭의와 동일하다.
246) 갈3:9, 13, 14; 롬4:22-24; 히13:8.
제12장 양자에 관하여
[1]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 분 때문에 의롭다 함을 입은 모든 자들로 하여금 양자 되는 은혜에 참여케 해 주셨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의 수효에 들게 되고, 자녀로서의 자유와 특권을 누리며, 그들 위에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게 되며, 양자의 영을 받아, 담대히 은혜의 보좌에 나아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으며, 불쌍히 여김을 받으며, 보호를 받아, 필요한 것을 공급받으며, 아버지의 사랑으로 징계는 받지만, 결코 버림받지 않으며, 구속의 날까지 인(印)치심을 받아,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영원한 구원의 후사(後嗣=상속자)들이다.
247) 엡1:5; 갈4:4, 5.
248) 롬8:17; 요1:12.
249) 렘14:9; 고후6:18; 계3:12.
250) 롬8:15.
251) 엡3:12; 롬5:2.
252) 갈4:6.
253) 시103:13.
254) 잠14:26.
255) 마6:30, 32; 벧전5:7.
256) 히12:6.
257) 애3:31.
258) 엡4:30.
259) 히6:12.
260) 벧전1:3, 4; 히1:14.
제13장 성화에 관하여
[1] 효과적인 부르심을 받고 중생된 자들은 그들 안에 창조된 새 마음과 영을 소유하게 되어, 실제적으로, 그리고 인격적으로 성화(聖化) 되어 간다. 그들이 받는 이 성화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공덕(功德)으로 인하여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과 및 그들 안에 계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실현된다. 온 몸을 주관하는 죄의 권세가 파괴되고, 죄의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정욕이 점점 더 약화되어 죽어 가는 동시에, 그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모든 은혜 안에서 점점 더 활기를 되찾고 강건하게 되어, 점차 그들의 실생활에 성결(聖潔)이 이루어진다. 이런 성결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한다.
261) 고전6:11; 행20:32; 빌3:10; 롬6:5, 6.
262) 요17:17; 엡5:26; 살후2:13.
263) 롬6:6, 14.
264) 갈5:24; 롬8:13.
265) 골1:11; 엡3:16-19.
266) 고후7:1; 히12:14.
[2] 이 성화는 신자의 전인격에 걸쳐 이루어지나, 그것이 아직 금생에는 불완전하여 그의 모든 지체에 부패의 잔재( A)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로 인하여 화해 없는 전쟁이 계속 일고 있으니 육체는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제어하시는 전쟁이다.
267) 살전5:23.
268) 요일1:10; 롬7:18, 23; 빌3:12.
269) 갈5:17; 벧전2:11.
[3] 이 전쟁에서 남아 있는 부패성이 일시 승세(勝勢)를 보일 수는 있으나, 성결케 하는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공급하시는 힘으로 말미암아 중생한 생명이 승리한다. 그리하여 성도들은 은혜 안에서 자라나며,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는 가운데 점점 성결(聖潔)을 완성해 간다.
270) 롬7:23.
271) 롬6:14; 요일5:4; 엡4:15, 16.
272) 벧후3:18; 고후3:18.
273) 고후7:1.
제14장 구원에 이르는 믿음
[1] 믿음의 은혜로 인하여 택한 자들은 하여금 그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그 은혜는, 그들의 심령 속에 임하는 성령의 역사로서, 일반적으로는 말씀의 증거에 의하여 역사한다. 또한 말씀과 성례집행과 기도에 의하여 믿음의 은혜는 증가되고 강화된다.
274) 히10:39.
275) 고후4:13; 엡1:17-19, 2:8.
276) 롬10:14, 17.
277) 벧전2:2; 행20:32; 롬4:11; 눅17:5; 롬1:16, 17.
[2]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기독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된 것은 무엇이든지 참되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권위로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성경 구절들의 각기 내용에 준하여 명령에는 순종하고, 경고에는 두려워하고, 현세와 내세에 대한 약속들은 그대로 받아들인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행위는, 은혜언약에 근거하여 칭의와 성화, 영생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만을 받아들여 영접하고 오직 그만 의뢰하는 것이다.
278) 요4:42; 살전2:13; 요일5:10; 행24:14.
279) 롬16:26.
280) 사66:2.
281) 히11:13; 딤전4:8.
282) 요1:12; 행16:31; 갈2:20; 행15:11.
[3]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정도에 차이가 있어 약한 때도 있고 강한 때도 있으며, 자주 또는 여러 면으로 부딪혀 약해지기도 하지만 끝내는 승리를 얻는다. 이 믿음이 여러 면으로 자라나서 확신에 이르게 되는 것은, 믿음의 주(主)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283) 히5:13, 14; 롬4:19, 20; 마6:30, 8:10.
284) 눅22:31, 32; 엡6:16; 요일5:4, 5.
285) 히6:11, 12, 10:22; 골2:2.
286) 히12:2.
제15장 생명에 이르는 회개에 관하여
[1] 생명에 이르는 회개는 복음의 은혜이다. 이 회개의 교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교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복음 사역자(使役者)들에 의해 전파되어야 된다.
287) 슥12:10; 행11:18.
288) 눅24:47; 막1:15; 행20:21.
[2] 생명에 이르는 회개로 말미암아 죄인은 자기의 죄가 위험할 뿐 아니라 더럽고 추하여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의로운 율법에 위배(違背)됨을 알고, 그리스도 안에서 회개한 자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깨닫게 되고, 그 결과 자기의 죄를 슬퍼하고 미워하여, 죄를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좇아 그와 동행하기로 작정하고 또한 노력하게 된다.
289) 겔18:30, 31, 36:31; 사30:22; 시51:4; 렘31:18, 19; 욜2:12, 13; 암5:15; 시119:128; 고후7:11.
290) 시119:6, 59, 106; 눅1:6; 왕하23:25.
[3] 회개가 죄에 대한 속상(贖償)이 되거나, 혹은 죄인이 용서받는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죄(赦罪)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다. 그러나 회개는 모든 죄인들에게 절대 필요한 것이니, 회개 없이는 누구든지 사죄(赦罪)를 기대할 수 없다.
291) 겔36:31, 32, 16:61-63.
292) 호14:2, 4; 롬3:24; 엡1:7.
293) 눅13:3, 5; 행17:30, 31.
[4] 아무리 작은 죄라도 너무 작은 죄이기 때문에 정죄를 받지 않아도 되는 죄가 없고, 그와 동시에 아무리 큰 죄라도 그것이 너무 크기 때문에 참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정죄를 가져오는 죄도 없다.
294) 롬6:23, 5:12; 마12:36.
295) 사55:7; 롬8:1; 사1:16, 18.
[5] 사람은 대략(大略) 회개하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그는 마땅히 자기의 죄악들을 낱낱이 구체적으로 힘써 회개할 의무가 있다.
296) 시19:13; 눅19:8; 딤전1:13, 15.
[6]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사적(私的)으로 고백하면서 그의 용서를 간구해야 된다. 그가 그렇게 하면서 죄를 버리면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것이다. 누구든지 그의 형제나 하나님의 교회를 중상한 자는, 사적으로 혹은 공적으로, 자기의 죄를 기꺼이 자백하며 통회하고, 손상을 입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회개한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피해자들은 그 회개하는 자와 화해(和解)를 이루고 또한 그를 사랑으로 영접해야 된다.
297) 시51:4, 5, 7, 9, 14, 32:5, 6.
298) 잠28:13; 요일1:9.
299) 약5:16; 눅17:3, 4; 수7:19; 시51.
300) 고후2:8; 갈6:1, 2.
제16장 선행에 관하여
[1] 선행은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말씀 가운데 명령하신대로 된 것만을 가리킨다. 성경 말씀의 보증 없이, 맹목적(盲目的)인 열심에 의한 것이나 혹은 선의(善意)를 가장하여 사람들에 의해 고안된 것들은 선행이 아니다.
301) 미6:8; 롬12:2; 히13:21.
302) 마15:9; 사29:13; 벧전1:18; 롬10:2; 요16:2; 삼상15:21, 23.
[2]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지는 선행(善行)은 살아있는 신앙의 열매요, 또한 증표(證票)이다. 신자들은 선행을 통하여 그들의 감사함을 나타내며, 확신을 견고케 하며, 형제에게 덕을 세우고, 신앙 고백을 명예롭게 하며, 대적들의 입을 막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저들은 하나님의 솜씨로 빚으신 자들로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기 위하여 창조되었으므로 성결의 열매를 맺음으로 끝내는 영생을 얻는다.
303) 약2:18, 22.
304) 시116:12, 13; 벧전2:9.
305) 요일2:3, 5; 벧후1:5-10.
306) 고후9:2; 마5:16.
307) 딛2:5, 9-12; 딤전6:1.
308) 벧전2:15.
309) 벧전2:12; 빌1:11; 요15:8.
310) 엡2:10.
311) 롬6:22.
[3] 신자들이 선을 행할 수 있는 힘은 결코 그들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령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선을 행할 수 있으려면, 그들이 이미 받은 은혜 외에도 그들 안에서 역사하여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그들로 하여금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는 동일한 성령의 실제적인 감화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하여 성령의 특별한 감동이 없으면 어떠한 의무도 행할 책임이 없다고 오해하며 태만(怠慢)해져서는 안 된다. 도리어 그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불 일듯이 일으키려고 부지런히 선행에 힘써야 한다.
312) 요15:4-6; 겔36:26-27.
313) 빌2:13, 4:13; 고후3:5.
314) 빌2:12; 히6:11, 12; 벧후1:3, 5, 10, 11; 사64:7; 딤후1:6; 행26:6, 7; 유1:20, 21.
[4] 순종함에 있어서 이생에서 가능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라 할지라도 자기의 의무 이상으로, 또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보다 더 많이 행할 수 없으니 도리어 그들이 해야 할 의무에도 미치지 못하여 부족한 것이다.
315) 눅17:10; 느13:22; 욥9:2, 3; 갈5:17.
[5] 우리의 가장 선한 행실도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죄나 영생을 얻을만한 공로(功勞)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의 선한 행실들과 내세의 영광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으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간격도 무한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행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익하게 해드릴 수도 없으며 또한 그것으로가 이전에 지은 죄의 빚을 갚을 수도 없다. 가령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의 의무를 다한 것뿐이요 우리는 그저 무익한 종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가 행한 것이 참으로 선하다면 그것은 성령의 은혜로 된 것이며, 그 선행이 우리를 통하여 행해지는 까닭에 여러 가지 약점과 결점으로 더럽히고 뒤섞여 있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견딜 수 없다.
316) 롬3:20, 4:2, 6; 엡2:8, 9; 딛3:5-7; 롬8:18; 시16:2; 욥22:2, 3, 35:7, 8.
317) 눅17:10.
318) 갈5:22, 23.
319) 사64:6; 갈5:17; 롬7:15, 18; 시143:2, 130:3.
[6]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의 인격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가납(嘉納)되었기 때문에 그들의 선행도 그리스도 안에서 가납된다. 그것은 그들의 선행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앞에 전혀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아들 안에 있는 그들을 보시기 때문에, 그들의 선행이 온전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행한 것이면 받으시고 상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뜻이다.
320) 엡1:6; 시143:2.
321) 고전1:3, 4.
322) 히13:20, 21; 고후8:12; 히6:10; 마25:21, 23.
[7]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의 행실이 그 자체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이고 자타(自他)에게 유익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신앙에 의해 정결해진 마음에서 난 것이 아니며, 말씀을 좇아서 옳게 행해진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삼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것은 죄악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며 그 행위자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에 합당하도록 도와주지 못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 같은 선(善)도 행치 않으면 더욱 죄악 되고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이 된다.
323) 왕하10:30, 31; 왕상21:27, 29; 빌1:15, 16, 18.
324) 창4:5; 히11:4, 6.
325) 고전13:3; 사1:12.
326) 마6:2, 5, 16.
327) 학2:14; 딛1:15; 암5:21, 22; 호1:4; 롬9:16; 딛3:5.
328) 시14:4, 36:3; 욥21:14, 15; 마25:41-43, 23:23.
제17장 성도의 견인에 관하여
[1]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독생자 안에서 받아들여 그의 성령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불러 성화 시키신 자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전적으로 또는 아주 타락할 수 없으며, 그들은 은혜의 자리에서 끝까지 견인하여 영원히 구원받는다.
329) 빌1:6; 벧후1:10; 요10:28, 29; 요일3:9; 벧전1:5, 9.
[2] 성도의 궁극적 구원은 그들의 자유의지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값없이 주시는 사랑에서 나오는 예정의 불변성,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의 중보의 효력, 성령의 내주하심과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씨, 그리고 은혜 언약의 신실성에 달려 있다. 이러한 모든 여건들로부터 궁극적인 구원의 확실성과 무오성(無誤性)이 보장된다.
330) 딤후2:18, 19; 렘31:3.
331) 히10:10, 14, 13:20, 21, 9:12-15; 롬8:33-39; 요17:11, 24; 눅22:32; 히7:25.
332) 요14:16, 17; 요일2:27, 3:9.
333) 렘32:40.
334) 요10:28; 살후3:3; 요일2:19; 살전5:23, 24.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은 사단과 세상의 시험, 그들 속에 남아 있는 부패성의 득세, 또는 그들을 보존해 주는 은혜의 방편들을 무시함으로 인하여, 혹시 중한 죄에 떨어지는 일이 있으며, 얼마동안 죄 중에 거하기도 한다. 그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키며, 성령을 근심케 하고, 그들이 받은 바 은혜와 위로의 일부를 상실케 되고, 그들의 마음이 완악해지며, 양심이 상하게 되고, 남을 해치거나 중상하며, 일시적인 심판을 자초한다.
335) 마26:70, 71, 74.
336) 시51:14; 삼하12:9, 13.
337) 사64:5, 7, 9; 삼하11:27.
338) 엡4: 30.
339) 시51:8, 10, 12; 계2:4; 아5:2-4, 6.
340) 사63:17; 막6:52, 16:14.
341) 시32:3, 4, 51:8.
342) 삼하12:14; 고전 11:32.
343) 시89:31, 32; 고전11:32.
제18장 은혜와 구원의 확신에 관하여
[1] 외식자(外飾者)나 중생하지 못한 자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소유한 줄 알고 거짓된 소망과 육적 교만으로 헛되게 자신을 속일 수 있으나 그들의 소망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주 예수님을 진실히 믿고 신실하게 그를 사랑하며 하나님 앞에서 선한 양심을 따라 행하기를 힘쓰는 자들은 구원의 자리에 있는 줄을 금생(今生)에서도 확신할 수 있고, 내세에 누릴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할 수 있다. 그 소망은 결코 그들을 부끄럽게 않을 것이다.
344) 욥8:13, 14; 미3:11; 신29:19; 요8:41.
345) 마7:22, 23.
346) 요일2:3, 3:14, 18, 19, 21, 24.
347) 롬5:2, 5.
[2] 이 확신은 허황된 소망에 근거한 그럴듯한 추측이나 그럴듯한 신념이 아니라 신앙에 근거한 무오한 확신이다. 이 확신은 구원을 약속한 하나님의 진리, 구원약속을 받은 자들의 속에 내재(內在)하는 은혜의 증거,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의 영과 더불어 증거하시는 성령의 증거에 기초하고 있다. 이 성령은 우리가 받을 기업의 보증이며 우리는 이 영으로 말미암아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다.
348) 히6:11, 19.
349) 히6:17, 18.
350) 벧후1:4, 5, 10,11; 요일2:3, 3:14; 고후1:12.
351) 롬8:15-16.
352) 엡1:13, 14, 4:30; 고후1:21, 22.
[3] 이 틀림없는 확신이 신앙의 본질은 아니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도 확신을 소유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릴 수도 있고 많은 난관에 부딪치고 난 후에야 이 확신을 가지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것들을 성령에 의하여 알 수 있기 때문에, 색다른 특별한 계시가 없어도 통상적인 은혜의 방편(성경말씀, 성례, 기도)을 바로 활용함으로 이 확신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각 신자는 그들의 부름 받은 사실과 택함 받은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서 부지런히 노력할 책임이 있다. 그렇게 힘쓰기만 하면, 그의 심령은 성령께서 주시는 화평과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로 부요케 되며, 힘 있게 또는 즐거운 마음으로 순종의 책임을 다하게 된다. 이러한 것들은 확신의 당연한 열매들이며 이렇게 되어 신자는 방종한 생활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
353) 요일5:13; 사50:10; 막9:24; 시:77:1-2.
354) 고전2:12; 요일4:13; 히6:11, 12; 엡3:17-19.
355) 벧후1:10.
356) 롬5:1, 2, 5, 14:17, 15:13; 엡1:3, 4; 시4:6, 7, 119:32.
357) 요일2:1, 2; 롬6:1, 2; 딛2:11, 12, 14; 고후7:1, 롬8:1, 12; 요일3:2, 3; 시130:4; 요일1:6, 7.
[4] 참된 신자일지라도 구원의 확신이 여러 가지 원인으로 동요되거나 약해지거나 중단될 수 있다. 이 같은 일은, 확신을 보전하는 노력을 소홀히 하거나, 양심을 상하게 하고 성령을 근심케 하는 죄를 범하거나, 어떤 급작스럽고 강렬한 시험에 빠지거나, 또는 하나님께서 그의 얼굴빛을 거두시어 그를 경외하는 자일지라도 흑암 중에 행하며 그 빛을 누리지 못하게 하실 경우 등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하나님의 씨를 완전히 상실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신앙의 생명, 그리스도와 형제들에 대한 사랑, 심령의 신실성, 의무에 대한 양심을 완전히 상실한 것도 아니다. 이 확신은 적당한 때에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소생하게 되며 그렇게 됨으로 그들은 전적인 절망에서 건짐을 받는다.
358) 아5:2, 3, 6; 시51:8, 12, 14; 엡4:30, 31; 시77:1-10; 마26:67-72; 시31:22, 88:; 사1:10.
359) 요일3:9; 눅22:32; 욥13:15; 시78:15, 51:8, 12; 사1:10.
360) 미7:7-9; 렘32:40; 사54:7-10; 시22:1, 88:.
제19장 하나님의 율법에 관하여
[1]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행위언약으로서 한 법을 주셨는데, 그 언약으로 말미암아 아담과 그이 모든 후손들에게 개인적이고 온전하고 정확하고, 그리고 영구히 순종할 의무가 있게 하였다. 동시에 아담이 이 법을 지키면 생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것을 어기면 사망을 내리실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그것을 지길 수 있는 힘과 능력도 주셨다.
361) 창1:26, 27, 2:17; 롬2:14, 15, 10:5, 5:12, 19; 갈3:10, 12; 전7:29; 욥28:28.
[2] 이 율법은 아담의 범죄 후에도 의(義)의 완전한 규범(規範)으로 존속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그 율법을 십계명으로 두 돌판에 기록하여 전하여 주셨다. 십계명의 처음 네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요, 다음 여섯 가지는 사람에 대하여 우리가 행할 본분이다.
362) 약1:25, 2:8, 10-12; 롬13:8, 9; 신5:32, 10:4; 출34:1; 롬3:19.
363) 마22:37-40; 출20:3-18.
[3] 흔히 도덕법이라고 불리는 이 율법 외에도 하나님은 아직 미숙한 교회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의식법(儀式法)을 주시기를 기뻐하셨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모형적(模型的)인 규례들이 포함되어 있는데, 그 일부는 예배에 관한 것으로, 이것들은 그리스도와 그가 베푸실 은혜, 그의 행적과 고난, 그의 공로로 주어질 유익들을 예표하는 것들이며, 또 다른 일부는 도덕적인 의무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이다. 그런데 모든 의식법들은 지금 신약시대에는 폐지되었다.
364) 히9:1-28, 10:1; 갈4:1-3; 골2:17.
365) 고전5:7; 고후6:17; 유1:23.
366) 골2:14, 16, 17; 단9:27; 엡2:15, 16.
[4] 하나님께서 (옛날) 국가로서의 이스라엘 민족에게 여러 가지 재판법(裁判法)을 주셨다. 재판법은 그 시대 국가가 없어짐과 함께 시효가 끝났다. 따라서 그것의 일반적인 형평(衡平)의 원리는 원용(援用)될 수 있겠으나 그 외에는 지금 다른 아무에게도 구속력이 없다.
367) 출21, 22:1-29; 창49:10; 벧전2:13, 14; 마5:17, 38, 39; 고전9:8-10.
[5] 도덕법(道德法)은 신자에게나 불신자에게 영원토록 순종을 요구하는 구속력을 가진다. 그것은 거기에 포함된 내용뿐만 아니라 또한 그 율법을 주신 창조자 하나님의 권위 때문에 그렇다. 또 그리스도께서는 복음으로 이같은 우리의 의무를 결코 폐하시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화하신다.
368) 롬13:8-10; 엡6:2; 요일2:3, 4, 7, 8.
369) 약2:10, 11; 롬3:19.
370) 마5:17-19; 약2:8; 롬3:31.
[6] 참된 신자는 행위언약 아래 율법에 매여 그로 인해 의롭다 함을 받거나 혹은 정죄되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 불신자들에게 율법이 크게 유익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크게 유익하다. 율법은 생활 지침으로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또는 그들의 의무가 무엇인지 알게 하며, 그에 따라 행하도록 지도하고 제제를 가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본성과 마음, 생활이 죄악으로 더러워진 사실을 발견케 하며, 율법에 비추어 자신을 점검함으로 더욱 죄책을 느껴 겸비케 하며, 또한 죄를 증오(憎惡)하게 한다. 따라서 율법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와 그의 온전하신 순종이 필요하다고 밝히 알게 한다. 마찬가지로 거듭난 자들에게도 그들의 부패를 제어하기 위해 율법이 유용한 것은 그것이 죄를 금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법의 경고들은, 그들이 비록 율법의 저주에서는 해방되었지만, 신자들에게 그들의 죄값을 보여 주며, 그 죄 때문에 이생에서 그들이 기대해야 할 고난을 보여 준다. 또 율법의 약속들은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사실과, 순종의 결과로 그들이 어떤 축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러한 축복들은 행위언약의 율법으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마땅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선을 행하고 악을 삼가는 것은, 율법이 선을 장려하고 악을 제제하기 때문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것이 곧 율법 아래 있고 은혜 아래 있지 않다는 증거가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371) 롬6:14; 갈2:16, 3:13, 4:4, 5; 행13:39; 롬8:1.
372) 롬7:12-25; 시119:4-6; 고전7:19; 갈5:14, 16, 18-23.
373) 롬7:7, 3:20.
374) 약1:23-25; 롬7:9, 14, 24.
375) 갈3:24; 롬7:24, 25, 8:3, 4.
376) 약2:11; 시119:101, 104, 128.
377) 슥9:13, 14; 시89:30-34.
378) 레26:1-14; 고후6:16; 엡6:2, 3; 시37:11; 마5:5.
379) 갈2:16; 눅17:10.
380) 롬6:12, 14; 벧전3:8-12; 시34:12-16.
[7] 위에 진술된 율법의 용도는 복음의 은혜와 상충되지 않고 도리어 서로 잘 응합(應合)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영께서 인간의 의지(意志)를 감화시켜서 그로 하여금 자의(自意)로 율법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필요한 일을 자유로이 또는 기쁘게 할 수 있게 해준다.
381) 갈3:21; 딛2:11-14.
382) 겔36:27; 히8:10; 렘31:33.
제20장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에 관하여
[1] 그리스도께서 복음 아래 있는 신자들을 위하여 값 주고 사신 자유는 죄책(罪責)에서의 자유, 하나님의 정죄하시는 진노와 도덕적 율법의 저주에서의 해방이요, 이 악한 세상에서 사단의 결박과 죄악의 지배에서의 해방이며,또 환난과 사망, 무덤이 주는 고통과 좌절감, 및 영원한 정죄로부터의 자유이다. 또한 이 자유는 그들이 하나님께 자유로이 나아가게 하고, 노예적 공포에서가 아니라 어린 아이 같이 단순하게 행하는 사랑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게 한다.
위의 모든 축복은 구약시대의 성도들도 누렸던 것이지만, 신약시대에는 신자들의 자유와 특권이 훨씬 더 증가되었으니 구약시대 이스라엘이 복속(服屬)던 의식법의 멍에에서 해방되었고, 구약시대의 성도들보다 더 담대하게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며, 율법시대 성도들보다 더 풍성한 성령의 교통하심을 누린다.
383) 딛2:14; 살전1:10; 갈3:13.
384) 갈1:4; 골1:13; 행26:18; 롬6:14.
385) 롬8:28; 시119:71; 고전15:54-57; 롬8:1.
386) 롬5:1, 2.
387) 롬8:14, 15; 요일4:18.
388) 갈3:9, 14.
389) 갈4:1, 3, 6, 7, 5:1; 행15:10-11.
390) 히4:14, 16, 10:19-22.
391) 요7:38, 39; 고후3:13, 17, 18.
[2] 하나님만이 인간 양심의 주님이 되신다. 그러므로 신앙과 예배의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거나 거기서 이탈된 인간적인 교리나 계명으로부터 인간의 양심은 벗어날 자유가 있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인간적인 교리를 믿거나 그런 계명에 순종함은 양심의 참 자유를 배반하는 것이며, 그런 맹신과 맹종을 요구함은 양심과 이성(理性)의 자유를 파괴하는 일이다.
392) 약4:12; 롬14:4.
393) 행4:19, 5:29; 고전7:23; 마23:8-10; 고후1:24; 마15:9.
394) 골2:20, 22, 23; 갈1:10, 2:4, 5, 5:1.
395) 롬10:17, 14:23; 사8:20.
[3]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실로 하여 죄를 범하거나 정욕을 따름은 그 자유의 목적을 파멸시키는 행위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목적은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받아 평생토록, 두려움 없이, 주님 앞에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주님을 섬기려는 것이다.
396) 갈5:13; 벧전2:16; 벧후2:19; 요8:34; 눅1:74, 75.
[4] 하나님께서 세상에 세우신 권세(權勢)들과 그리스도께서 속량(贖良)해 주신 (영적) 자유는 양자가 서로 상충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서로 세워 주고 보존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구실로 삼아, 국가적인 것이든 교회적인 것이든 간에, 적법한 권세나 또는 그것의 합당한 법집행을 반대하는 자는 실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규례를 반대함이다. 그런 반대적인 선전이나 운동 같은 것은 자연 계시에도 위배되고 이미 알려진 기독교의 신앙, 예배, 행위의 원리, 또는 경건의 능력에 반대된다. 다시 말하면 그런 그릇된 선전이나 행동은 그 성격으로 보든지 그 행위로 보든지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평화와 질서를 파괴시키는 것이다. 그런 행위는 문책되어야 하며 교회의 권징과 국법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397) 마12:25; 벧전2:13, 14, 16; 롬3:1-8; 히13:17.
398) 롬1:32; 고전5:1, 5, 11, 13; 요이1:10, 11; 살후3:14; 딛1:13, 3:10; 마18:15-17; 딤전1:19-20, 2:2;
계2:14, 15, 20, 3:9.
제21장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1] 자연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 준다. 그는 선하시며 만물에 선을 행하신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며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敬畏)하며, 그를 사랑하며, 그를 찬송하며, 부르며, 신뢰하고, 섬겨야 한다.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禮拜)하는 합당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셨으며, 그것은 그의 계시하신 의지, 곧 성경 말씀으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상상이나 고안 또는 사단의 지시를 따라 어떤 보이는 형상을 예배에 사용하거나 기타 성경에 규정되어 있는 않은 다른 방법으로 예배를 드리면 안 된다.
399) 롬1:20; 행17:24; 시119:68; 렘10:7; 시31:23, 18:3; 롬10:12: 시62:8; 수24:14; 막12:33. .
400) 신12:32; 마15:9; 행17:25; 마4:9, 10; 신4:15-20; 출20:4-6; 골2:23.
[2] 참된 예배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 일체 하나님께 드려야 하며 오직 그에게만 드려야 된다. 천사들이나 성도들이나 그 밖에 어떤 피조물에게도 예배하지 말 것이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는 중보자가 없이는 하나님을 예배할 수 없으며, 중보는 오직 그리스도의 중보 사역뿐이다.
401) 마4:10; 요5:23; 고후13:14; 계5:11-14.
402) 골2:18; 계19:10; 롬1:25.
403) 요14:6; 딤전2:5; 엡2:18; 골3:17.
[3] 감사함으로 드리는 기도는 바른 예배에 규정된 특수한 요소로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기도를 드리려면, 성자(聖子)의 이름으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깨닫는 마음과 경외심과 겸손과 간절함, 그리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간구해야 한다. 대표로 소리 내어 기도할 때에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해야 된다.
404) 빌4:6.
405) 시65:2.
406) 요14:13, 14; 벧전2:5.
407) 롬8:26.
408) 요일5:14.
409) 시47:7; 전5:1, 2; 히12:28; 창18:27; 약5:16, 1:6, 7; 막11:24; 마6:12, 14, 15; 골4:2; 엡6:18.
410) 고전14:14.
[4] 기도는 합당한 것을 위하여 해야 되며, 현재 살아 있는 모든 사람들이나 장차 출생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그러나 죽은 자를 위해서나, 또 죽음에 이르는 죄를 범한 자로 알려진 사람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 것이다.
411) 요일5:14.
412) 딤전2:1, 2; 요17:20; 삼하7:29; 룻4:12.
413) 삼하12:21-23; 눅16:25, 26; 계14:13.
414) 요일5:16.
[5]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규정된 통상적인 요소들은, 경건한 마음으로 성경을 봉독하는 것, 건전한 설교, 순종하는 태도와 깨닫는 마음과 신앙과 경외심으로 말씀을 경청하는 것, 심령에서부터 은혜롭게 찬송하는 것,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를 합당하게 집행하고 합당하게 받는 것으로 모두 예배에서 실행되어야 할 요소들이다. 이 밖에도 종교적 맹세, 서원, 엄숙한 금식, 특별한 때를 따라 드리는 감사 예배 등을 때와 절기를 따라 거룩하게 또는 경건하게 실행할 것이다.
415) 행15:21; 계1:3.
416) 딤후4:2.
417) 약1:22; 행10:33; 마13:19; 히4:2; 사66:2.
418) 골3:16; 엡5:19; 약5:13.
419) 마28:19; 고전11:23-29; 행2 :42.
420) 신6:13; 느10:29.
421) 사19:21; 전5:4, 5.
422) 욜2:12; 에4:16; 마9:15; 고전7:5.
423) 시107; 에9:22.
424) 히12:28.
[6] 복음시대에는 기도나 기타 예배 행위가 어떤 일정한 예배 장소에서 거행되어야 한다거나, 예배를 거행하는 장소 때문에 혹은 어떤 장소를 향하여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열납하시는 것이 아니다. 어디서나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신령과 진리로 예배함이다. 이런 예배는 가정적으로 날마다 할 수 있고, 또 개인적으로 은밀히 할 수도 있다. 특별히 공중 예배의 집회는 보다 엄숙하게 실행되어야 한다. 공중 예배는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과 섭리에 의하여 우리를 부르시는 것이므로 경솔하게 행하거나 등한히 하거나 저버려서는 안 된다.
425) 요4:21.
426) 말1:11; 딤전2:8.
427) 요4:23, 24.
428) 렘10:25; 신6:6, 7; 욥1:5; 삼하6:18, 20; 벧전3:7; 행10:2.
429) 마6:11.
430) 마6:6; 엡6:18.
431) 사56:6, 7; 히10:25; 잠1:20, 21, 24, 8:34; 행13:42; 눅4:16; 행2:42.
[7]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위하여 일정한 분량의 시간을 성별하는 것은 자연 법칙에 합당한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에서 적극적이고 도덕적이고 영구적인 명령에 의하여 모든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칠 일 중 하루는 안식일로 정하시어 하나님을 위하여 거룩하게 지키게 하셨다. 이 안식일은 창세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까지는 이레 중 마지막 날이었으나 그의 부활 이후부터는 이레 중 첫날로 바뀌었다. 성경에서는 이 날을 주일(主日)이라고 하며, 이 날은 그리스도 교회의 안식일로서 세상 끝날까지 계속 지켜져야 한다.
432) 출20:8, 10, 11; 사56:2, 4, 6, 7.
433) 창2:2, 3; 고전16;1, 2; 행20:7.
434) 계1:10.
435) 출20:8, 10; 마5:17, 18.
[8]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주님을 위하여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마음을 합당하게 준비하고 일상적인 일들을 미리 정돈한 후에, 세상적인 일과 오락에 관한 말과 생각으로부터 떠나 종일 안식할 것이며, 그 날의 모든 시간은 공적예배와 사적예배를 위하여, 또는 부득이한 의무수행, 그리고 자선을 위하여 사용해야 된다.
436) 출20:8, 16:23, 25, 26, 29, 30, 31:15-17: 사58:13; 느13:15-22.
437) 사58:13; 마12:1-13.
제22장 합당한 맹세와 서원에 관하여
[1] 합당한 맹세(盟誓)는 경건한 예배에 규정된 한 요소이다. 이 맹세 행위는 예배 중 맹세자가 정당한 경우에 엄숙히 하나님을 불러 그가 단언하거나 약속한 것에 대해 증인이 되어 주시고, 그가 맹세한 것에 허위가 없는가 하나님께서 판단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이다.
438) 신10:20.
439) 출20:7; 렘19:12; 고후1:23; 대하6:22, 23.
[2]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만 맹세할 수 있으며, 그 이름은 전적으로 경외(敬
H) 하는 마음과 경건한 마음으로 사용해야 한다. 영광스럽고 두려운 이름을 망령되이 혹은 경솔하게 사용하면서 맹세하거나, 또는 어떤 다른 것을 들어서 맹세하는 것은 죄악 되고 가증스런 일이다. 중대한 일에 있어서 맹세하는 것은 구약이나 신약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장되어 있으므로, 합당한 맹세는 적법한 권위에 의하여 요구되면 이행되어야 한다.
440) 신6:13.
441) 출20:7; 렘5:7; 마5:34, 37; 약5:12.
442) 히6:16, 고후1:23; 사65:16.
443) 왕상8:31; 느13:25, 스10:5.
[3] 맹세하는 자는 누구든지 맹세가 중대하고 엄숙한 행위라는 것을 마땅히 명심해야 한다. 자기가 진리라고 확신하게 된 것 이외에는 그 무엇이든지 맹세하여 공언하지 말 것이며, 누구든지 선하고 정당한 것, 자기가 옳다고 믿는 것, 자기가 행할 능력이 있거나 행하기로 작정한 것 이외의 것에 대해서 맹세하면 안 된다. 그러나 선하고 의로운 것에 대한 맹세가 합법적인 권세로부터 요구되었을 때에 그것을 거절하는 것은 죄가 된다.
444) 출20:7, 렘4:2.
445) 창24:2-3, 8-9.
446) 민5:19, 21; 느5:12; 출22:7-11.
[4] 맹세는 애매 모호하지 않게, 분명하게, 평범하고 상식적인 말로 해야 한다. 맹세의 이행을 위하여 부득이 죄를 지어야 한다면 이는 잘못된 맹세이며, 또 죄 아닌 것을 맹세했을 경우에는 자신에게 해로울지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비록 이단자(異端者)나 불신자에게 맹세했을지라도 맹세는 지켜야 한다.
447) 렘4:2; 시24:4.
448) 삼상25:22, 32-34; 시15:4.
449) 겔17:16, 18, 19; 수9:18, 19; 삼하21:1.
[5] 서원(誓願)은 그 성질상 맹세와 같다. 그러므로 그것도 역시 신앙에 따라 신중하게 해야 되며, 또한 그와 같이 신실하게 실천해야 된다.
450) 사19:21; 전5:4-6; 시61:8, 66:13, 14.
[6] 서원은 어떤 다른 피조물이 아닌 하나님 상대로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 열납(悅納)되기 위하여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믿음과 의무감으로, 하나님이 베푸신 긍휼에 감사하여, 또는 소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 또 서원하는 자는 그 서원에 따르는 필요한 모든 의무 수행과 및 그와 관련된 일들에 더 엄격히 책임져야 한다.
451) 시76:11; 렘44:25, 26.
452) 신23:21-23; 시50:14; 창28:20-22; 삼상1:11; 시66:13, 14, 132:2-5.
[7] 그 누구도 하나님의 말씀에서 금지된 것이나, 하나님께서 명하신 의무에 방해되는 일, 그리고 서원자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고 또한 할 수 있도록 능력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도 없는 일을 서원해서는 안 된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에 로마교에서 장려하는 수도승들의 종신독신 서원, 청빈생활 서원, 엄격한 수행 서원 등은 그것이 의미하는 고상한 수준의 완전한 성결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미신적이며 범죄케 하는 올무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에 빠져서는 안 된다.
453) 행23:12, 14; 막6:26; 민30:5, 8, 12, 13.
454) 마19:11, 12; 고전7:2, 9; 엡4:28; 벧전4:2; 고전7:23.
제23장 공직자에 관하여
[1] 전 세계의 대 주재요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광과 백성의 공익을 위하여 위정자들을 자기 밑에 세우사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신다. 이를 위하여 칼의 힘으로 그들을 무장시키시고, 선행하는 자들을 보호하여 권장하고 악행 하는 자들을 벌하게 하셨다.
455) 롬13:1-4; 벧전2:13, 14.
[2] 그리스도인들이 공직에 임명되었을 때에 그것을 맡아 수행하는 것은 합당하다. 그 직무를 수행할 때에는 각기 나라의 건전한 법률에 따라서 경건과 공의와 평화를 유지하도록 힘써야 된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신약시대인 오늘날에도, 정당하고 부득이한 경우에는 합법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도 있다.
456) 잠8:15, 16; 롬13:1, 2, 4.
457) 시2:10-12; 딤전2:2; 시82:3, 4; 삼하23:3.
458) 눅3:14; 롬13:4; 마8:9, 10; 행10:1, 2; 계17:14, 16.
[3] 국가의 위정자는 예배시의 말씀 선포, 성례집행, 천국열쇠의 권세(교회 치리권)를 가지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교회를 봉사할 의무가 있으니, 모든 권세는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이다. 그 봉사의 성격은) 교회 안에 통일과 화평이 보존되게 하며, 하나님의 진리가 순전하게 지켜지게 하며, 모든 불경건한 행위와 이단을 억제하고, 예배와 권징에 있어 모든 부패와 악습을 예방하고 개혁되도록 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규례들이 합당하게 결정되고 집행, 준수되도록 하기 위해 명령을 발하는 것은 위정자의 권한이요 또한 의무이다. 이런 일들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하여 그는 종교회의를 소집하고, 그 회의에 참석하여 회의에서 행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게 되도록 협조할 권한이 있다.
459) 대하26:18.
460) 마16:19.
461) 롬13:1, 4.
462) 엡4:11-13
463) 왕하18:3-4
464) 대하19:8.
[4] 위정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며, 세금과 기타 공과금을 납부하고, 그들의 적법한 명령에 순종하고, 양심적으로 그들의 권위에 순복하는 것은 백성의 의무이다. 불신앙이나 종교의 차이로 말미암아 위정자의 적법한 권위를 무시하거나 마땅한 일에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의무 수행에 교직자들도 예외는 아니다. 교황은 세속적 사항들에 있어서 각 나라의 위정자들이나 그 백성을 주장할 권리가 전혀 없다. 그들에게 이단 혹은 기타 과오가 있다는 판단 하에서도 그들의 통치권이나 생명을 빼앗을 아무런 권리도 없다.
465) 딤전2:1, 2.
466) 벧전2:17.
467) 롬13:7.
468) 딛3:1;롬 13:5.
469) 벧전2:13-14 ,16;롬 13:1; 왕상2:25; 행25:9-11, 벧후2:10-11
470) 살후2:4; 계13:15-17.
제24장 결혼과 이혼에 관하여
[1] 결혼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이루어져야 한다. 한 남자가 동시에 한 명 이상의 아내를 두는 것은 불법한 일이고, 한 여자가 동시에 한 명 이상의 남편을 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471) 창2:24; 마19:5, 6; 잠2:17.
[2]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기 위해, 합법적인 자녀의 생산에 의한 인류의 증가와 경건한 자손 의한 교회의 증가를 위해, 또 부정을 예방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
472) 창2:18.
473) 말2:15.
474) 고전7:2, 9.
[3] 분별력이 있어서 결혼에 합의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합법적으로 결혼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오직 주 안에서 결혼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개혁주의 신앙을 소유자는 불신자나 천주교 신자나 기타 우상 숭배자와 결혼해서는 안 되며, 또 생활면에서 노골적으로 악하거나 멸망 받을 만한 이단설을 주장하는 자와 경건한 자가 결혼함으로 멍에를 같이 해서는 안 된다.
475) 히13:4; 딤전4:3; 고전7:36-38.
476) 창24:3-8.
477) 창34:14; 출34:16; 신7:3, 4; 왕상11:4; 느13:25-27; 말2:11-12; 고후6:14-16.
[4] 성경 말씀으로 금해져 있는 혈족이나 인척간에는 결혼할 수 없다. 그런 근친결혼은 세상법으로도 합법화되지 못하며 쌍방의 동의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남자는 자기 자신의 골육지친 뿐 아니라 자기 아내의 골육지친 중의 아무와도 결혼해서는 안 되고, 여자도 자기 자신의 골육지친 뿐 아니라 자기 남편의 골육지친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
478) 레18; 고전5:1; 암2:7.
479) 막6:18; 레18:24-28; 레20:19-21.
[5] 약혼한 후에 범한 간음이나 간통이 결혼 전에 발각되면 무흠한 측에서 그 약혼을 파기할 수 있다. 그리고 결혼한 후에 간음한 일이 있을 경우에는 무흠(無欠)한 측에서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고, 또 이혼한 후에 무흠한 측은 범죄한 측을 죽은 사람과 같이 여겨 다른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
480) 마1:18-20.
481) 마5:31, 32.
482) 마19:9; 롬7:2, 3.
[6] 인간의 마음은 부패한 까닭에,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사람들을 부당하게 가르려고 이혼사유에 대하여 변론하기 쉬우나, 결혼의 결속을 최소하기에 합당한 원인이란, 부부 중 한 사람이 간음한 경우와 또는 고의적으로 자기 배필을 버려 교회나 행정부가 전혀 어떻게 화해시켜줄 도리가 없는 경우뿐이다. 이혼을 할 경우에는, 어떤 이유로든지 그 당사자들의 개인적 의사와 결정에 맡길 것이 아니라 공적이고 법적인 질서와 절차를 경유해서 처리되어야 한다.
483) 마19:8, 9; 고전7:15; 마19:6.
484) 신24:1-4.
제25장 교회에 관하여
[1] 보편적 또는 우주적 교회는 무형적이다. 이 교회는 그리스도를 그 머리로 모시고 그 아래 하나로 모여지는 택한 백성이 총수로 구성되며, 전에도 모였고 지금도 모이고 장차도 모일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요, 그의 몸이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다.
485) 엡1:10, 22, 23, 5:23, 27, 32; 골1:18.
[2] 보편적 교회로서 유형교회는, 신약시대(복음시대)의 세계적 교회로서 어느 한 민족 (예컨대,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전 세계에서 참 복음을 믿고 고백하는 모든 신자들과 그 자녀들로 구성되는데, 주 예수그리스도의 왕국이요. 하나님의 집이며 권속이다. 통상적으로는 이 보편적 교회 밖에서는 결코 구원받는 자가 없다.
486) 고전1:2, 12:12, 13; 시2:8; 계7:9; 롬15:9-12.
487) 고전7:14; 행2:39; 겔16:20, 21; 롬11:16; 창3:15, 17:7.
488) 마13:47; 사9:7.
489) 엡2:19, 3:15.
490) 행2:47.
[3] 그리스도께서는 이 보편적인 유형교회에 하나님의 말씀과 규례에 의한 복음 사역의 방편들을 주셨으니, 이는 현세에서 세상 끝날 까지 성도들을 모으시고 온전케 하려 하심이다. 그리고 그의 약속을 따라 그 자신의 임재하심과 성령으로 말미암아 복음 사역의 방편들을 효과적으로 작용케 하신다.
491) 고전12:28; 엡4:11-13; 마28:19, 20; 사59:21.
[4] 이 보편적 교회의 식별(識別)되는 정도가 어떤 때에는 더하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덜하기도 한다. 그리고 보편적 교회의 지체가 되는 개 교회는 복음의 교리가 어떻게 가르쳐지고 받아들여지는가에 따라, 그리고 규례의 집행과 공적인 예배를 순수하게 행하고 있는가에 따라 더 순결하기도 하고 혹은 덜 순결하기도 하다.
492) 롬11:3, 4; 계12:6, 14.
493) 계2, 3; 고전5:6, 7.
[5] 지상에서는 가장 순수한 교회일지라도 혼잡과 오착으로 떨어질 수 있다. 어떤 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아니고 사단의 회당이 될 만큼 깊이 탁락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을 예배하는 교회가 있다.
494) 고전13:12; 계2, 3; 마13:24-30, 47.
495) 계18:2; 롬11:18-22.
496) 마16:18; 시72:17, 102:28; 마28:19, 20.
[6]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유일하신 머리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 외에는 어느 누구라고 할지라도, 어떤 의미로든지 교회의 머리가 아니다. 그는 적그리스도요 죄악의 사람이요 저주의 아들, 곧 교회에서 그리스도와 및 하나님과 관계된 모든 것을 대적하여 자기를 영화롭게 하는 사람이다.
497) 골1:18; 엡1:22.
498) 마23:8-10; 살후2:3, 4, 8, 9; 계13:6.
제26장 성도의 교통에 관하여
[1] 그의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는 모든 성도들은 성령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와 그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영광에 동참한다. 그리고 그들은 상호간에도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는 까닭에 각기 받은 직능(職能)과 은사의 유익을 통용(通用)하게 되며, 각기 받은 은사대로 공사간(公私間)에 덕을 세워 피차 영육간의 유익에 이바지하는 유익을 행한다.
499) 요일1:3; 엡3:16-19; 요1:16; 엡2:5, 6; 빌3:10; 롬6:5, 6; 딤후2:12.
500) 엡4:15, 16; 고전12:7, 3:21-23; 골2:19.
501) 살전5:11, 14; 롬1:11, 12, 14; 요일3:16-18; 갈6:10.
[2] 성도들은 그들의 공동 신앙고백에 의하여 상호간에 거룩한 교제와 교통을 유지하게 되어 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과 피차 덕을 세우는데 유익이 되는 신령한 봉사를 하는 것과, 또한 물질적으로 돕는 일에 있어서도 각자 능력과 필요에 따라 구제함으로 거룩한 교제와 교통을 유지한다. 이러한 교통은 하나님이 기회 주시는 대로 어디서든지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신자들에게 확대되어야 한다.
502) 히10:24, 25; 행2:42, 46; 사2:3; 고전11:20.
503) 행2:44, 45; 요일3:17; 고후8:, 9:; 행11:29, 30.
[3]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교통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리스도의 신성(神聖)의 실체(實體)에 동참하는 것이 결코 아니며, 그리스도와 동등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중에서 그 어느 하나라도 긍정한다면 그것은 불경건이요 또 신성 모독(冒瀆)이다. 그리고 성도들이 서로 교통한다는 것은, 각자가 지닌 은사나 재산의 소유권이 상실되거나 침해된다는 의미도 아니다.
504) 골1:18, 19; 고전8:6; 사42:8; 딤전6:15, 16; 시45:7; 히1:8, 9.
505) 출20:15; 엡4:28; 행5:4.
제27장 성례에 관하여
[1] 성례는 은혜언약의 거룩한 표요, 인(印)치심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으로써, 그리스도와 그가 주시는 은혜를 나타내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는 유익을 확증하게 하며, 교회에 속한 자들과 세상에 속한 자들을 구별하며,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하게 하려는 것이다.
506) 창17:7; 롬4:11.
507) 고전11:23; 마28:19
508) 고전10:16; 갈3:17, 27; 롬15:8; 출12:48.
509) 롬6:4, 고전10:16, 21.
[2] 성례식에 있어서 표호(票號)와 실체(實體) 표호가 상징하는 실물과 그 효과 사이에는 영적 관계가 있으니, 즉 성례전적인 연합이다. 그러므로 실체에 대한 이름이 그 표호에 대하여 옮겨져 불려질 수 있다.
510) 창17:10; 마26:27, 28; 딛3:5.
[3] 올바로 실시된 성례에서 나타나는 은혜는, 성례식 자체에 있는 어떤 능력에 기인하는 것도 아니고, 집례자의 경건, 혹은 그의 의도(意圖)에 의함이 아니다. 그 은혜의 효과는 다만, 성령의 역사와 성례에 사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달렸으니, 즉 성례를 행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성례를 합당하게 받는 자들에게 은혜가 임한다는 주님의 약속 때문이다.
511) 롬2:28, 29; 벧전3:21.
512) 마3:11; 고전12:13.
513) 마26:27,28; 28:19, 20.
[4]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설립하신 성례식은 둘 뿐인데, 곧 세례와 성찬이다. 이 두 가지 중 그 어느 예식도 합법적으로 임직된 목사 이외의 어떤 사람도 집례(執禮)할 수 없다..
514) 마28:19; 고전11:20, 23, 4:1; 히5:4.
[5] 구약의 성례가 표현하고 상징하는 영적인 뜻은 신약의 성례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515) 고진10:1-4.
제28장 세례에 관하여
[1] 세례는 신약에서 예수께서 친히 제정(制定)하신 성례이다. 세례식은 수세자를 유형 교회에 엄숙하게 가입시키는 방편이 될 뿐 아니라, 수세자가 은혜 언약에 들어가는 표(Sign)와 인(Seal)으로서 그 의미를 가진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자가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것과, 중생, 및 죄 씻음을 받은 것을 의미하고,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운 생활을 해야 된다는 헌신의 표요 확증이 된다. 이 세례는 그리스도께서 지시하신 대로 그의 교회에서 계속 시행하되 세상 끝날 까지 해야 되는 것이다.
516) 마28:19; 막16:16.
517) 고전12:13; 갈3:27-28.
518) 롬4:11; 골2:11, 12.
519) 갈3:27; 롬6:5.
520) 딛3:5-6.
521) 행2:38, 22:16; 막1:4.
522) 롬6:3, 4.
523) 마28:19, 20.
[2] 세례에 사용되는 외형적 요소는 물이다. 합법적으로 부르심을 받은 목사가 물로 세례를 베풀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한다.
524) 행8:36, 38, 10:47.
[3] 세례 베푸는데 있어서 사람을 물 속에 잠글 필요는 없다. 세례 베푸는 바른 방법은 세례 받는 사람의 머리 위에 물을 붓든지 혹은 머리 위를 물로 적심으로 족하다.
525) 행2:41, 16:33; 막7:4, 히9:10-21.
[4] 실제로 그리스도를 믿고 또 순종할 것을 공적으로 고백하는 성인(成人)에게 세례를 베풀 뿐만 아니라, 그 부모 중에 둘이 다 믿든지 혹은 그 중 한 사람만이라도 믿는 집의 영아(嬰兒)들에게도 세례를 베푼다.
526) 창17:7, 9; 갈3:9,14; 골2:11, 12; 행2:38, 39; 롬4:11, 12.
527) 고전7:14: 마28:19; 막10:13-16; 눅18:15.
[5] 세례를 멸시하거나 경홀히 여기는 것은 큰 죄악이지만 세례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받는데 있어 불가결의 요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즉 사람이 세례를 받지 않고도 거듭나서 구원받는 일이 있고, 세례 받은 사람이라고 모두 다 중생한 것도 아니다.
528) 눅7:30; 출4:24-26.
529) 롬4:11; 행10:2, 4, 22, 31, 45, 47.
530) 행8:13-23.
[6] 세례의 효력은 세례를 시행하는 그 시각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그러나 세례를 올바로 시행하면 그 약속된 은혜가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그의 정하신 때에 그 은혜에 속한 자들에게, 성인이든 영아이든, 한결같이 성령에 의해 나타나고 부여된다.
531) 요3:5, 8.
532) 갈3:27; 딛3:5; 엡5:25, 26; 행2:38-41.
[7] 세례는 누구에게든지 단 한번만 베풀어져야 한다.
533) 딛3:5.
제29장 주의 만찬(晩餐)에 관하여
[1] 우리 주 예수께서 그가 잡히시던 날 밤에 그의 몸과 피로 세우신 성례를 제정하셨으며, 이를 주의 만찬이라 칭하시고, 그의 교회로 하여금 세상 끝날까지 지키게 하셨다. 주의 만찬의 의미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영구히 기억케 함이고, 그의 죽으심이 신자들에게 주는 모든 혜택을 보증하는 표이며, 그리스도 안에서 신자들이 영적으로 양육되어 자라게 하시는 것이고, 또 그들이 행해야할 의무에 헌신하게 하시는 것이며, 그리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교통과 또 그리스도의 신비스러운 몸의 지체들로서 신자들 상호간에 가지는 교통의 매는 줄과 보증이 되게 하심이다.
534) 고전11:23-26, 10:16, 17, 21, 12:13.
[2] 성찬 거행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성부에게 자신을 바친다는 의미가 아니며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실제로 다시 제물로 드려진다는 의미도 아니다. 성찬 거행의 올바른 의미는, 일찍이 그리스도께서 친히 십자가 위에서 단 한 번 자신을 영원한 제물로 바치신 희생을 기념하는 것일 뿐이며, 하나님이 이루신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에 대한 신자들의 영적 봉헌(奉獻)일 뿐이다. 그러므로 천주교에서 행하는 바와 같은 미사의 제사는 그리스도께서 택한 백성을 위하여 단 한번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신 것으로 충족했던 그리스도의 속죄적 희생의 절대적 완전성을 심히 손상시키는 것이다.
535) 히9:22, 25, 26, 28.
536) 고전11:24, 26.
537) 히7:23, 24, 27, 10:11-12, 14, 18.
[3] 주 예수께서 이 예식을 집행하도록 목사들을 세우셨다. 그들은 이 성례에 필요한 말씀을 회중에게 선언하고, 기도하고, 떡과 포도주를 축사하여 그것을 다른 것과 구별하여 거룩하게 사용한다. 성별(聖別)한 떡을 취하여 떼어 회중으로 받게 하며, 또 잔을 취하여 회중들에게 나누어주어 예식에 참여토록 한다. 집행하는 자들 자신도 회중과 함께 참여할 것이며, 그 자리에 모여 함께 한 자만 참여케 할 것이며 참석하지 않은 자에게는 누구에게도 주지 말아야 한다.
538) 마26:26-28; 막14:22-24; 눅22:19, 20; 고전11:23-29.
539) 행20:7; 고전11:20.
[4] 사사로운 미사, 혹은 신부(神父)나 그 밖의 아무에게서나 혼자서 성례를 받는 것은 잘못이다. 또 잔을 일반 회중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거행하거나, 떡과 포도주를 존숭(尊崇)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거나 높이 쳐들어 올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거나, 참석하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혹은 다른 신령한 용도를 이유로 그것을 남겨두는 것 등은 성찬의 본질에도 위반되고 그리스도께서 이 예식을 제정하신 본래의 뜻에도 어긋난다.
540) 고전10:6.
541) 막14:23; 고전11:25-29.
542) 마15:9.
[5] 성찬에 사용되는 외형적인 요소들은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용도를 위해 바르게 구별되었을 때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관련된다. 이 관계는 참된 것이지만 다만 비의적(秘意的)인 대리적 표현으로 관련시켜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떡과 포도주는 그것이 상징하는 이름 즉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라고 불리운다. 그렇지만 그 요소들은 실체와 본질에 있어서는 전과 다름없는 떡과 포도주 그대로이다.
543) 마26:26-28.
544) 고전11:26-28.
[6] 떡과 포도주가 신부의 축사나 혹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화된다는 화체설(化體說)은, 성경과 반대될 뿐 아니라 상식과 이성(理性)에도 모순된 것이며, 성찬의 본질을 뒤엎는 교리이고, 많은 미신과 우상숭배의 원인이 되어 왔고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545) 행3:21; 고전11:24-26. 눅24:6, 39.
[7] 성찬을 합당하게 받는 신자들은, 표면적으로 성례의 눈에 보이는 물질적 요소들(떡과 포도주)을 받으면서 내면적으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먹는 것처럼) 받아 그의 죽으심이 가져온 모든 혜택을 받는다. 성찬을 받는 그 때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육신적으로나 물리적으로 떡과 포도주에 내포되거나 혼합되거나 깔려 있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영적으로 그것을 받는 자의 외부 감각에 존재하는 것처럼 그 규례를 믿는 자의 믿음에 영적으로 현림(顯臨)한다.
546) 고전11:28.
547) 고전10:16.
[8] 무지하고 완악한 사람들이 성찬에 참여한다면, 그들은 외형적인 요소(떡과 포도주)는 받지만 그 요소가 의미하는 실체(예수의 죽으심과 그 은혜)는 받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은 합당치 못하게 성찬에 참예함으로 주님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를 짓게 되어 심판을 자초하게 된다. 그러므로 무지하고 믿음 없는 자들은 그리스도와의 교통을 누리는데 적합하지 못한 것처럼, 그들이 회개하지 않는 동안에는 사실상 주의 만찬상에 나올 자격도 없고, 성찬에 참여하도록 허락될 수도 없다.
548) 고전11:27-29; 고후6:14-16.
549) 고전5:6, 7, 13; 살후3:6, 14, 15; 마7:6.
제30장 교회의 권징에 관하여
[1] 교회의 왕이시고 머리이신 주 예수께서는 교회의 직원들에게 치리권(治理權)을 제정해 주셨는데, 그것은 세상 정권과 구별되어 있다.
550) 사9:6, 7; 딤전5:17; 살전5:12; 행20:17, 28; 히13:7, 17, 24; 고전12:28; 마28:18-20.
[2] 이 교회의 직원들에게 천국 열쇠(치리권)가 맡겨졌다. 그들은 위임받은 치리권에 의하여 죄를 맬 수도 있고 풀어 줄 수도 있으며, 말씀과 권징을 실시하여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천국 문을 닫기도 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그것을 열어주는 권세를 가지고 있다.
551) 마16:19, 18:17, 18; 요20:21-23; 고후2:6-8.
[3] 권징(勸懲)의 필요와 목적은 범죄한 형제를 바로 잡아 회복하기 위함이며, 다른 형제들로 하여금 동일한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또 온 교회에 퍼질 것으로 우려되는 누룩을 제거하기 위함이며, 그리스도의 영광과 복음의 거룩한 신앙고백을 옹호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멈추어지도록 하기 위함이다. 만약 교회가 교회 안의 패역한 범죄로 하나님의 언약과 그 인치심이 더럽혀지는 것을 치리하지 않고 그대로 방임한다면 하나님의 진노가 그 교회 전체에 임할 것이다.
552) 고전5; 딤전5:20; 마7:6; 딤전1:20; 고전11:27-34; 유1:23.
[4] 권징의 목적을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하여, 교회의 직원들은 당사자의 죄와 과실의 성격에 따라 권계(勸戒), 일시적 수찬 정지(停止), 또는 출교(黜敎) 등의 조치를 취할 것이다.
553) 살전5:12; 살후3:6, 14, 15; 고전5:4, 5, 13; 마18:17; 딛3:10.
제31장 대회와 총회에 관하여
[1] 교회의 보다 좋은 정치와 건덕(健德)을 위하여 보통 대회 혹은 총회라고 불리는 회의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개교회들의 감독자들과 기타 지도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잘못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건덕을 위하여 그들에게 주신 그들의 직분과 권세를 가지고 이같은 회(會)들을 세워 주관하고, 또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적절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자주 회의를 소집하여야 한다.
554) 행15:2, 4, 6.
555) 행15:.
556) 행15:22, 23, 25.
[2] 대회와 총회의 사역들은, 신앙상의 논쟁이나 양심상의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 공적인 예배와 하나님의 교회정치를 좀 더 잘하기 위하여 규칙(規則)과 지침(指針) 을 정하는 것, 실정의 경우에 대한 고소를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권위 있게 그러한 문제들을 결정하는 것 등이다. 그 회(會)에서 제정되는 판결과 결정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하다면, 순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이 결정들이 말씀에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제정된 제도가 결정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규례와 같은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557) 행15:15, 19, 24, 27-31, 16:4; 마18:17-20.
[3] 사도시대 이후 모든 공의회는, 총회 차원에서 또는 개별적 회의에서, 과오를 범할 가능성이 있고, 또 사실상 많은 회의가 실수를 범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이들 회의들은 신앙과 본분의 규칙은 될 수 없고 다만 도움이 될 뿐이다.
558) 행17:11; 고전2:5; 고후1:24; 엡2:20.
[4] 대회나 총회는 교회적인 사건 이외에는 어떠한 일도 처리하거나 결정할 수 없다. 국가에 관한 정치 문제에 간여하지 말 것이며, 다만 비상시에는 위정자에게 겸손히 청원할 수 있다. 또한 위정자로부터 요구가 있을 경우에도 양심의 만족을 위하여 그 요구에 응하여 충고할 수도 있다.
559) 눅12:13, 14; 요18:36.
제32장 사후 상태와 부활에 관하여
[1] 인간의 몸은 죽은 후에 티끌로 돌아가고 썩게 된다. 그러나 그 영혼은 죽지도 않고 잠자는 것도 아니고 불멸의 실체로서 곧바로 그 창조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의인들의 영혼은 죽는 순간 온전히 거룩해지고. 지극히 높은 하늘에 영접되어 영광 중에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게 된다. 그들은 그 곳에서 몸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그리고 악인이 죽으면, 그의 영혼은 지옥에 던져지고 그 곳에서 고통을 받으며, 흑암 가운데 머물러 마지막 날의 심판을 기다린다. 육신을 떠난 영혼들이 가는 곳에 대하여 성경은 위의 두 장소 외에 아무 곳도 말하지 않는다.
560) 창3:19; 행13:36.
561) 눅23:43; 전12:7.
562) 히12:23; 고후5:1, 6, 8; 빌1:23; 행3:21.
563) 눅16:23, 24; 행1:25; 유1:6, 7; 벧전3:19.
[2]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살아남아 있는 신자들은 죽지 않고 그 몸이 변화를 받을 뿐이며, 모든 죽었던 신자들은 여전(如前)한 몸으로 부활하게 되는데, 다만 그 체질이 다를 뿐이다. 그들의 이와 같은 몸은 다시 그들의 영혼과 결합되어 영원히 있을 것이다.
564) 살전4:17; 고전15:51, 52.
565) 욥19:26, 27; 고전15:42-44.
[3] 마지막 심판 날에 불의한 자들의 몸은 그리스도의 권능에 의하여 욕된 것으로 부활한다. 그러나 의로운 자들의 몸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광 가운데 일으킴을 받아 그리스도의 영화로운 몸의 형상으로 화(化)하게 된다.
566) 행24:15; 요5:28, 29; 고전15:43; 빌3:21.
제33장 최후의 심판에 관하여
[1]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의대로 세상을 심판하실 한 날을 정하시고, 그리스도에게 모든 심판의 권세를 주셨다. 그 날에는 타락한 천사들이 심판을 받을 뿐 아니라, 땅 위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 그들의 생각과 말과 행위를 고백하고, 그 몸으로 행한 대로 선악간에 보응(報應)을 받게 된다.
567) 행17:31.
568) 요5:22, 27.
569) 고전6:3; 유1:6; 벧후2:4.
570) 마16:27; 계20:11-13.
[2] 하나님께서 심판 날을 정하신 목적은, 택한 자들의 영원한 구원에서 그의 자비로운 영광을 나타내시고, 악하고 거역하는 불택자(不擇者) 택자(擇者)들의 영벌(永罰)에서 그의 공의의 영광을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그 때에 의로운 자들은 영생으로 들어가서 주님의 존전(尊前)에서 임하는 충만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복음을 거역하는 자들은 영원한 고통 가운데로 던져져 거기서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된다.
571) 마25:31-46; 롬2:5, 6, 9:22, 23; 마25:21; 행3:19; 살후1:7-10.
[3]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들이 범죄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또는 경건한 사람들이 역경에서 큰 위로를 얻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심판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하기를 원하신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께서는 심판 날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으셨으니, 사람들이 어느 때에 주께서 오실는지 알지 못하므로 육적인 평안에 안주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고, 또 항상 영적으로 깨어 있어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말할 수 있도록 준비하게 하심이다. 아멘
572) 벧후3:11, 14; 고후5:10, 11; 살후1:5-7; 눅21:27, 28; 롬8:23-25.
573) 마24:36, 42-44; 막13:35-37; 눅12:35, 36; 계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