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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박사 칼럼] “바벨론 강가에서”

황현조 목사(커네티컷교협회장, 비전한인교회 담임)

“바벨론 강가에서”

사람은 여러 종류의 감정들을 가진 존재다. 기쁨, 슬픔, 사랑, 미움, 절망, 공포, 불안, 고독… 이처럼 다양한 감정들을 소유한 존재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 시편에는 이처럼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하나님께 진솔하게 토로하면서 그분의 응답을 바라는 성도의 기도와 찬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웨스트민스터신학교 구약학 교수 트렘퍼 롱맨은 “시편은 구약이 전달코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이라고까지 말했다.

음악에 장조와 단조가 있어서 인간의 다양한 감정들을 소화하듯 시편에도 장조의 시편이 있고 단조의 시편이 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려는 시편의 역사적 배경은 상당히 어둡고 비극적이다. 바벨론은 주전 23세기경 일어난 고대 왕국이었다. 그 위치는 인류문명의 발상지 중의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현재의 남부 이라크다. 메소포타미아는 “강들의 중간”이라는 뜻으로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의 중간지역의 비옥한 땅이었다. 유리한 자연환경 속에 바벨론은 찬란한 문명의 강대국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바벨론은 많은 나라를 무참히 정복한 악한 침략국이었다.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옛 바벨론 왕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야심 속에 이웃 쿠웨이트를 침공 합병함으로써 제1차 걸프 전쟁을 일으켰다. 그 결과 그는 비참하게 사망했다. 그럼에도, 현재 국제 테러리즘의 원흉이 되고 있는 ISIS(Islam State in Iraq and Syria)도 그와 꼭 같은 야욕을 갖고 있다. 즉 이라크와 시리아에 이슬람법(Sharia법)에 철두철미한 이슬람 국가를 먼저 세운 후에 전 세계를 이슬람화하겠다는 허무맹랑한 꿈을 갖고 있다. 이런 비현실적인 꿈을 실현시키고자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들은 그동안 무자비한 테러를 자행하며 전 세계에 막대한 피해와 공포를 주어왔다.

성경은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최초의 디아스포라(흩어짐)의 민족이 되는 슬픈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주전 586년 군사 강국 바벨론은 유다를 침략하여 초토화시켰다. 예루살렘 성을 무너뜨리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혔다. 성전 집기들을 불태우고 양민들을 학살했다. 여성들을 겁탈하고 어린아이들을 바위 위에 메어쳐 죽였다. 그리고 많은 백성들을 손발을 묶고 포로로 잡아갔다.

당시 바벨론으로 잡혀 온 포로 중에 한 음악가이자 시인이 있었다. 그는 바벨론 강가에 앉아 조국이 유린당하던 비참한 모습을 회상하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때 지은 시가 바로 시편 137편이다. 이것은 매우 슬픈 단조의 시편이다. 그 시에는 애달픔과 회한이 스며있고 바벨론의 잔인성에 대한 극도의 분노와 증오심이 숨김없이 표출되고 있다.

그는 수금(Harp)을 연주하는 음악가였다. 그러나 이제는 수금을 버드나무 위에 걸어 놓았다. 도저히 음악 연주를 할 의욕이 없어 아예 포기해 버렸다. 원수들이 그에게 “시온의 노래”(찬송) 한 곡 불러보라고 조롱했다. 그는 대답했다. “우리가 이 방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그럴 바에야 차라리 수금을 연주하는 내 손의 재주를 잊어버리고 노래하는 내 입의 혀가 입천장에 붙는 것이 더 낫겠노라”(시 137:4-6)고 그의 결연한 신앙 의지를 나타냈다. 조국과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애절한 사랑이 그의 가슴속 깊이 사무치고 있었다.

이 시인은 더 나아가서 하나님께 바벨론을 징벌해 달라고 간절히 탄원하고 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이까?(How long, O LORD?)”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그들의 흉악한 살인과 강폭함을 심판해 달라고 흐느끼며 호소하고 있다. 물론 신자들은 개인적 사사로운 복수심으로 하나님께 기도해선 안 된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너희가 친히 원수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롬 12:19)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지금 이 시인이 하나님께 탄원하는 호소는 개인적 사사로운 복수의 기도가 아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잔학하고 불의한 폭력을 공의로우신 재판장 하나님께서 엄중히 심판하시고 징벌해 주실 것을 탄원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악인의 멸망과 의인의 회복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와 영광이 온 천하에 드러나고 사회정의가 실현되기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탄원시(Supplication Psalms) 또는 저주시(Imprecatory Psalms)라고 불리는 이러한 시는, 시편 전체에 걸쳐 상당히 많이 나타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국가적, 사회적, 개인적으로 부당하게 희생당하고 고통받는 사건들이 세계 각처에서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기독교에 적대적인 이슬람국가, 북한, 중국 등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한 신앙의 박해를 받고 있다. 심지어는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하는 미국이나 한국에서마저 반기독교적인 공격과 역차별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바벨론 강가에서 남모르게 눈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도 이 시인과 같이 “하나님의 뜻과 공의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탄원하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지 않겠는가? 점점 세속화되어 가는 이 시대에 “하나님의 정의가 물같이, 공의가 하수같이 흐르도록”(암 5:24) 우리 크리스천들은 항상 기도하며 힘써야 되리라고 믿는 바이다. 하나님의 공의가 없는 세상에는, 평안도 없기 때문이다. No Justice, No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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