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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박사 칼럼] “너희 앞서 가시는 너희 하나님”

황현조 목사(커네티컷교협회장, 비전한인교회 담임)

“너희 앞서 가시는 너희 하나님”

며칠 있으면 우리는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다. 새해는 우리로 하여금 지난해를 무사히 지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게 한다. 그런가 하면, 미지의 앞날에 대한 불안을 안겨주기도 한다.

미국의 2천5백 개 신문들이 매일 점성술(Horoscope) 난을 싣는다. 점성술이란 하늘의 별자리를 보고 사람의 운수, 행복과 불행을 점치는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미래를 불안해하길래 많은 신문에서 매일 이것을 싣고 있겠는가? 거리를 지나다 보면 손금 보는 곳(Palm Reader)도 꽤 눈에 띈다. 왜 그럴까? 그것도 미래를 모르는 인간의 불안 때문이 아니겠는가?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생을 “불안의 존재”라고 정의했다. 그중 대표적인 샤르뜨르는 불안의 원인을 이렇게 설명했다. “인생은 아무런 목적과 방향 없이, 그 본질이 규정되지 않은 채 그냥 이 세상에 던져진 불안한 실존적 존재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샤르뜨르가 이런 주장을 하는 배경에는 “하나님은 죽었다”고 규정한 허무주의 철학자 니체의 영향이 크다. 물론 그들의 말은 성경의 가르침과 전혀 다르다. 성경의 교훈은 “인생은 본질이 규정되지 않은 채 목적 없이 그냥 세상에 던져진 존개가 아니다. 또 실존이 본질에 앞서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실존에 앞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으로 창조하심을 통해 인생에게 본질을 먼저 주시고 우리가 살아야 할 실존의 목적과 방향을 주셨다. 인간이 불안해진 것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밝힌다. 그래서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키엘케고르는 성경의 교훈을 겸손히 받아들여 “인간은 절대자 하나님을 믿고 만나야만 불안을 극복할 수 있다”고 선언하였다.

불법이 범람하는 세상을 불안 속에 살아가며 앞날을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들에게 굿 뉴스가 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미래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하여 내일과 장래를 모르고 불안 속에 시작하지만, 우리가 걸어가는 장래를 아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불안할 이유는 사라지고 오히려 기대와 희망으로 넘치게 된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 앞서 가시는 너희 하나님”이라고 선포하였다.

“너희 앞서 가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울 것이며, 사람이 자기 아들을 안음같이 너희를 안아서 목적지에 이르게 하시며, 너희가 장막 칠 곳을 미리 찾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너희 갈 길을 인도해 주시리라”(신 1:30-33).

우리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를 약속하셨다. 첫째는, 너희를 위해 싸워 주시겠다고 하셨다(30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며 박해받을 때 하나님께서 악한 바로 왕과 싸워 그들을 구원해 주신 것 같이 이제도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시겠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을 무서워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바울 사도께서도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 8:31)라고 선언하셨다.

둘째, 너희를 안아 주시겠다고 하셨다(31절). 부모가 자식을 품에 안음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 인생행로 중에 안아 주시겠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복지를 향해 가는 40년 광야길에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친히 가슴에 안고 등에 업어 주셨다. 이 말씀에 은혜받고 메리 스티븐슨이라는 여류시인이 쓴 “모래 위의 발자국”(Footprints in the Sand)이란 유명한 시가 있다. 이 시는 아주 은혜로운 시인지라 벽에 걸 수 있는 사진 액자나 지갑에 넣을 수 있는 카드로도 나와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모래 위를 걸어갈 때 모래 위에 한 발자국만 보이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발자국이 아니고 우리를 안고 가시는 하나님의 발자국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역경을 당할 때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셋째, 하나님은 너희를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지켜주시고 광야 길을 잘 가도록 지시해 주신다고 하셨다(33절). 사막 광야 길을 갈 때 제일 힘든 것이 낮의 뜨거운 땡볕 더위와 밤의 추운 사막 기온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햇볕을 가려서 시원하게 하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난로 히터처럼 따뜻하게 하셔서 사막의 추위를 이기게 하셨다. 그리고 장막 치기에 좋은 곳도 미리 찾으셔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인도해 주셨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다음과 같이 찬양했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 여호와께서 네 우편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치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하시며 또 내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히 지키시리로다”(시 121:5-8).

이제 우리는 새해를 맞이한다. 시인 프로스트는 그의 시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을 통해서 사람들이 잘 가지 않은 길을 모험적으로 선택해 볼 것을 권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이 한해를 모험적으로 선택하고 걸어가야 한다. 이 길을 걸어갈 때 “우리 앞서 가시는 우리 하나님”을 믿고 가야 한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세상 불의와 싸워 주신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험한 인생길을 걸어갈 때 품속에 안아 주신다. 우리 하나님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위협하는 이 세상을 우리가 걸어갈 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신다. 그 좋으신 하나님, “우리 앞서 가시는 우리 하나님”을 굳게 붙들고 희망의 새해를 힘차게 살아가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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