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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박사 칼럼] “경이로운 기적, 그리고 진리”

황현조 목사(커네티컷교협회장, 비전한인교회 담임)

“경이로운 기적, 그리고 진리”

예수님의 탄생은 경이로운 기적이었다. 그것은 인류 역사의 분기점을 이루는 사건이었다. 그의 오심을 통해 어두웠던 인류 역사는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됐다. 구원의 기쁨과 소망이 찾아왔다. 17세기 프랑스의 과학자, 수학자, 사상가였던 파스칼은 그의 명저 ‘팡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의 중심이요 만민이 향하는 목표”라고 하였다. 그래서 세계 역사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역사 (B.C.- Before Christ)와, 오신 후의 역사(A.D.- Anno Domini : In the year of our Lord)로, 즉 主前과 主後로 나눠지게 됐다.

예수님의 탄생은 구약 예언의 성취였다. 구약에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해 456회나 예언돼 있다. 모세오경에 75회, 선지서에 243회, 역사서와 시가서에 138회가 기록돼 있다.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예언들 중 가장 최초의 예언은 창세기 3장 15절에 나타난다. “여자의 후손”이 나타나 사탄의 머리를 쳐서 이길 것을 예언하고 있다. 여기 “여자의 후손” The Seed of woman은 복수가 아닌 단수로서 오실 메시야를 가리킨다. 고로 창세기 3장 15절은 원시복음, 또는 최초의 복음(Proto Evangelion)이라고 불려진다. 이 예언적 원시복음이 신약성경에서 그대로 성취되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라는 말씀으로 원시복음 예언의 성취를 확증하고 있다.

주전 8백 년에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했던 이사야 선지자는, 오실 메시야 예수님을 “기묘자” (Wonderful)라고 하였다(사 9:6). 과연 그의 탄생은 “기묘자”란 말 그대로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의 출생은 인간 부모를 통한 것이 아니었고 동정녀 몸을 통한 성령의 역사였다. 그는 “평화의 왕,” “왕의 왕”으로 오셨지만 화려한 왕궁이 아닌 말 구유에서 태어나셨다. 그의 인격, 생애, 가르침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과 승천도 경이로운 것이었다. 그는 희랍의 알렉산더 대왕, 로마의 시저 황제, 프랑스의 나폴레옹 등 소위 세계 정복을 꿈꾸던 영웅적 인물들과는 달리 아무런 정치권력 또는 돈과 무기가 없었지만, 오직 십자가의 복음으로 세계를 정복하였다.

예수님은 인류의 정신계와 철학자, 과학자들에게 가장 큰 빛을 비추셨다. 그는 웅변술이나 시작(詩作) 공부도 않으셨지만 이 세상 그 어떤 웅변가, 시인도 추종할 수 없는 진리의 명언들을 남기셨다. 그는 비록 33년이란 짧은 인생을 살고 가셨지만, 그에 관한 책, 음악, 노래, 찬송, 문학, 미술, 조각 작품들은 이 세상 그 어느 누구의 것들보다 많고, 또 가장 길게 남아 있다. 수많은 불신 권력자들이 그를 역사에서 지우기 위해 성경을 불태우고 성도들을 박해했지만, 그는 진리의 말씀으로 오늘날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인류에게 끼쳐 오고 계신다. 그의 생애는 실로 경이로운 기적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리되신 예수님을 거부하며 살아가고 있다. 진리되신 예수님을 거부한 불신 세상은 진리가 상대화되고 혼돈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삶의 푯대와 방향감각을 잃어버린 채 방황할 수밖에 없다. 비진리를 좇아가면서도 그것이 진리라고 착각한다. 조그만 경험과 지식에 근거한 자기 생각을 진리라 하기도 하고, 세상 여론을 진리라고 따르기도 한다. 그러나 진리는 타락한 인간의 생각, 사색, 이성을 통하여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진리는 오직 진리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고 하면서 인간의 생각과 이성을 자기 존재의 기반으로 삼는 잘못된 진리를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소위 현대 합리주의(Rationalism)의 길을 열어 놓았다. 그 결과 많은 현대인들이 합리주의에 빠져서 성경말씀 속의 절대 진리를 거부하고, 자기 이성이 모두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진리를 결정하며 살아가는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 합리주의적 세상 풍조와는 달리, 이미 4세기의 신학자 어거스틴은 “하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참 지식을 가질 수 있다”고 하였고, 13세기 신학자 아퀴나스는 “존재는 생각 전에 온다”(Sum Ergo Cogito)고 했다. 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아니라, “나는 존재한다. 고로 생각한다”라는 성경적인 선언을 했던 것이다. 과연 그렇다. 우리 인간의 존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생각은 단지 존재의 결과일 뿐이다. 인간은 오직 인간에게 존재를 주신 창조주 하나님을 통해서만 진리 발견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혼돈된 세상에 진리를 주시기 위해 탄생하셨고 그는 이 땅에 오셔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고 선언하셨다. 이제 누구든지 진리되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구원과 평강의 삶이 약속되었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의 참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경이로운 탄생을 1500년 전에 찬양한 어거스틴의 시 한 편을 번역하여 나누고자 한다.


예수님,

그는 태양의 창조자,

그러나 태양 아래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아버지,

그러나 육신의 어머니를 통해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하늘과 땅의 조성자,

그러나 하늘 아래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는 말할 수 없이 지혜로우신 분,

그러나 지혜롭게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는 온 세상을 소유하신 분,

그러나 말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는 하늘의 별을 다스리는 분,

그러나 어머니 가슴에 안겨 자라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본체로서 광대하신 분,

그러나 섬기는 종으로서 작은 분이셨습니다.

(This poem is quoted from “The Book of Jesus,” ed., Calvin Miller,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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