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조 목사(커네티컷교협회장, 비전한인교회 담임)
“감사의 美學”
엊그제 추수감사절을 지냈다. 비단 기독교인들 뿐만 아니라 모든 미국인들에게 추수감사절은 큰 명절이다. 그런데 추수감사절은 다른 명절들과는 좀 다른 특이한 명절이다. 어느 대통령이나 인물의 생일, 전사자 추모, 독립기념, 노동절 등과는 달리 추수감사절은 나라와 각 개인에게 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감사”의 의미를 되새겨 보게 하는 아름다운 절기이기 때문이다. 세계 여러 나라들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국가적 명절을 가진 나라가 과연 몇 나라나 되겠는가?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대부분 왜 감사하지 못하는 것일까? 유대인의 탈무드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이 아홉 명의 식구를 데리고 단칸방에 살면서 너무 좁고 힘들어 랍비를 찾아가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랍비는 불평하는 그에게 염소 한 마리를 그 방안에 들여서 일주일 동안 같이 살다가 오라고 했다. 싫었지만 랍비의 말대로 하고 일주일 후에 랍비에게 갔다. “랍비님, 도대체 이게 말이 됩니까? 냄새나고 더러워서 도무지 견딜 수가 없어요.” 랍비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염소를 방에서 치우고 지내다가 일주일 후에 다시 오시요.” 일주일 후 그 사람이 아주 밝은 표정으로 랍비에게 와서 말했다. “랍비님, 인생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방 안에 염소 없이 우리 식구 아홉만 살 수 있는 그 순간순간이 너무 좋고 행복합니다.”
그에게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 사는 환경은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환경을 보는 그의 생각과 관념이 바뀌어졌다. 심리학자 데일 라빈스는 이렇게 썼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변에 문제들이 있기 때문에 불평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오랜 임상치료 경험에 의하면, 사람들이 불평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에게 많은 문제들이 생기는 것을 발견했다.” 일반적으로 감사치 않고 불평하는 사람은 자기 삶 속에 불만과 좌절감이 증가될 뿐만 아니라 행복도가 떨어진다. 그리고 그가 속한 가정이나 교회, 공동체에도 불평의 바이러스를 전염시키게 된다.
우리 주위에는 늘 불평, 비판, 원망의 소리가 있다. 하지만 많은 경우 불평은 환경을 호전시키기보다는 악화시킨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권면한다. “모든 일을 원망(불평)과 시비가 없이 하라”(빌 2:1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현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상은 밝아지고 평화가 온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신대륙 프리머스에 도착한 청교도들에 의해 1621년에 시작되었다. 그들은 춥고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추수를 통해 생존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몇 개의 조개가 담긴 접시와 냉수 한 컵을 놓고 바다와 모래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감사하는 “소박한 프리머스의 디너”(A Scanty Plymouth Dinner)를 묘사한 윌리암 부루스터의 그림은 우리에게 항상 감동을 준다.
당시 청교도들에게는 추수감사절 디너를 갖기 전에 이런 전통이 있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들이 자기의 빈 접시 위에 다섯 알의 옥수수를 놓고 한 알씩 들면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축복들을 얘기하였다. 얼마나 멋진 감사의 모습인가?
우리는 보통 우리가 얼마나 많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살아왔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때로는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혜택과 축복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망각과 교만은 감사를 앗아간다. 감사는 모든 행복의 원천이다. 어거스틴은 “지옥에는 감사라는 단어가 없다”고 했다. 감사가 없는 사람은 지옥 같은 인생을 살 수밖에 없다. 매일 하루하루를 추수감사절로 여기고 살면 행복은 저절로 찾아올 것이다.
우리 모두 이곳에 온 이민자들로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내려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옥수수 한 알씩 들 수 있는 추수감사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축복과 혜택을 갖지 못한 북한 동족들이나 아프리카 등 열악한 환경에 처해있는 이웃들을 위해 기도하며 온정의 손길을 내밀도록 하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시 103:2). 추수감사절을 맞아 이 시편 기자의 찬송이 우리 모두의 감사 찬송으로 만방에 널리 울려 퍼지기를 소원하는 바이다. Happy Thanksgiv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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