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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근 목사 칼럼] 없는 듯이 계시는 분

최인근 목사(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없는 듯이 계시는 분

로버트 잉거솔이라는 철저하게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자가 있었다. 그러한 그가 어느 날은 많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확증시켜 주겠노라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리고선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하여 외쳐댔다. “과연 하나님이 진짜로 있다면 내가 지금부터 5분 동안 가장 악한 말로 당신을 저주하겠으니 이 많은 사람이 보는데서 나를 죽이시오. 그렇다면 과연 하나님이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이 입증 될 것이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당신이 나를 죽이지 못하면 하나님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는 것이오”라고 말이다.

그리고서는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반 걱정반 된 얼굴로 쳐다보는데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온갖 추악한 말로 하나님을 5분 동안이나 저주를 하였다. 그런데도 과연 그는 죽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의기양양하여 “여러분 보셨지요. 하나님은 없는 겁니다. 만약 그가 있다면 자신을 그렇게 저주하고 욕하며 죽여 보라고 외치는 나를 이대로 살려 두었겠소?”라며 하나님이 없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입증시킨 자기 자신에 도취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 때에 참으로 믿음이 좋은 신자인 데오도르 파커라는 성도가 나타나서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여보시오 선생, 당신에게 아들이 하나 있소?”라고. 그러자 잉거솔은 “그럼 아들이 있지요”, “그렇다면 당신에게 아들이 욕을 하며 대들면서 아버지 이제 나를 죽여 보시오 라고 한다면 그 아들을 당장 죽일 수 있겠소?”, 그러자 잉거솔은 화를 내면서, “이보시오 양반, 아들이 죽이라고 대든다고 부모가 자식을 그 자리에서 죽일 그런 사람이 어디에 있단 말이오”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였다. 그러자 데오도르는 점잖게 이렇게 충고해 주었다. “바로 그것이오, 당신이 없다고 하는 하나님은 당신의 주장처럼 정말 안계셔서 당신을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저주하는 당신까지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기에 죽이지 않으신 것이오”라고.

우연한 기회에 10여년 전에 함께 운동도 하고 교회도 섬기며 가깝게 사랑하였던 청년 한 사람을 만났다. 그 때보다 훨씬 더 핸섬해지고 보기에 좋아 보여 지나가는 말로 “결혼했소”하고 물어 보았더니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더 물어 보았다. “왜 때가 지났을텐데 아직도 하지 않았느냐?”고. 그랬더니 그 청년이 빙긋이 웃으면서 하는 말이 “혼자 있으니까 너무나도 편하고 좋아요”라고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어쩌면 그 말이 옳다고 인정이 되어 더 이상 물어 보지 않았다.

사람이 혼자 있다는 것은 참으로 매력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죽고 못 살 그런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한 혼자서 꿈을 안고 사색하며 때를 기다리며 살아 가는 삶이 상당히 매력 있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격하게 생각해 보면 사람은 그 누구도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령이든 성령이든 靈物(영물)과 함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악령에게 강력한 인도를 받게 되면 가룟 유다와 같이 스승도 팔고 망하는 자가 되고 성령에게 이끌리게 되면 사도 바울과 같이 세상을 등지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히 평생을 바치게 된다.

이것은 유다나 바울 같은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 되는 사항이 아니다. 이와 같은 사실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사람이 실제로 많이 있지만, 다만 영적인 문제임으로 육신적인 문제와 같이 많이들 흔하게 들어 내 놓고 이야기 하지 않을 뿐이다. 만약에 이와 같은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진다면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해답은 저절로 해결해 갈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의 영은 만나기를 소망하고 사모하는 자에게는 늘 나타나 역사해 주시는 독특한 사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자손 대대로 잉거솔과 같이 하나님을 부인하는 무신론의 가정에서 태어나 무신론을 따른 사람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하나님의 영의 이끌림을 받게 되자 부모형제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었고, 또한 그 하나님을 가르치고 전하는 목사가 되었다. 그래서 필자는 하나님이 없다고 큰 소리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가슴이 아프다. 필자 자신의 옛 모습을 보는 어리석음이 그들 가운데서 묻어 나오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 나는 것도 또한 죽는 것도 오직 하나님의 크신 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필자는 숱하게 많이 체험하였다.

골프를 모르는 사람에게 필드에서 빅 스윙을 하여 하늘 높이 날라가는 하얀 공을 쳐다 보는 그 맛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아무리 설명하여도 듣는 이는 관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설명하여 그 분과 함께 하는 맛을 설명하거나 가르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만남의 역사가 사랑이 되는 이 아름다운 봄이 다하기 전에 하나님과의 만남을 한번 주선해 보는 것은 삶 전체를 바꾸어 볼 수 있는 귀중한 멋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를 중심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가 나뉘어 진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인데,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실존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이와 같은 사실이 불신자들 속에까지 가능할 수 있었겠는가? 그 누가 뭐라고 하든지간에 하나님은 계시는 것이고 그 분은 여전히 잉거솔 같은 인생들을 죽이지 않고 사랑하신다. 그러니 과연 그 분은 만나보고픈 크신 분이 아니겠는가? 우리들의 이민생활이 만남이 없어 외롭고 쓸쓸하다면 더 더욱 그러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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