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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근 목사 칼럼] 신과 인간의 차이

최인근 목사(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신과 인간의 차이

인생을 다 살고 산전수전을 다 겪은 현자가 남자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얼굴은 이쁜데 머리는 텅비어 멍청한 여인을 택하겠소 아니면 얼굴은 못생겼으나 머리는 명석하여 똑똑하고 지혜로운 여인을 택하겠소?” 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여자에게도 물었습니다. “당인은 마음은 좋고 선량하기 이를데 없는데 능력과 재주는 없어 가난한 남자를 택하겠소 아니면 성격은 까다롭고 괴팍한데 능력과 재주는 있어 돈을 잘 버는 남자를 택하겠소?” 하고 말입니다.

사실 이는 참으로 고민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 남자가 이쁜 여자를 싫어하겠으며 어느 여자가 돈 많은 남자를 좋아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평생을 살아가려면 진정 어떤 사람이어야 하겠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모습에서 완전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을 풍자한 이야기라 하겠습니다.

우리는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인생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이란 시를 잘 알 것입니다. 이는 바로 러시아의 문호 푸쉬킨의 작품입니다. 과연 그는 러시아에서도 알아주는 인물이라 제가 1990년 소련의 문이 열리자 말자 방문하였었는데도 푸쉬킨의 집은 방문자들로 분비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가 푸쉬킨의 작품에 깊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의 해안에 감격하며 언제고 한번 만나보고 싶었고 또한 그의 작품에 대한 깊은 이야기도 나누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마침내 시간을 만들어 푸쉬킨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차에서 내리는 그의 머리 속에 푸쉬킨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그렇게 사람의 가슴에 필요한 말로서 작품을 만들고 그 작품으로 뭇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그런 인물이라면 금발의 머리에 잘 생긴 얼굴에다 교양미 넘치는 구슬 같은 말을 할 것으로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갔습니다.

마차에서 내려 설레는 가슴으로 푸쉬킨의 정원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집안에서 뛰쳐나왔습니다. 아차 하는 순간에 피할 겨를도 없이 그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습니다. “아이쿠 죄송합니다… 제가 빨리 피했어야 하는건데…”하면서 용서를 빌었습니다. 그러나 험상궂은 그 사람은 사과하는 그를 획 뿌리치고는 매우 기분 나쁘다는 얼굴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는 생각했습니다. ‘푸쉬킨은 어떻게 저런 사람과 상대를 하고 있을까? 그를 만나면 저런 사람은 당신의 명성에 해를 끼칠 것이니 상종하지 말라’고 해야지 하면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옷을 털고 기분을 다스리며 푸쉬킨의 집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그러자 하인이 나와 반기며 누구를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푸쉬킨 선생을 좀 만나러 왔다고 하자 그 하인은 의아해 하면서 되물었습니다. 방금 집으로 들어오면서 그분을 만나지 못했느냐고 말입니다. 조금 전에 자신과 부딛힌 그 사람이 바로 푸쉬킨이었던 것입니다. 투르게네프는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한 체 그 자리에 한참 동안이나 멍하니 서 있어야만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람의 모습입니다. 옛 말에도 그 사람을 바로 알기 원하거든 그 사람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사장님이나 회장님을 알려면 그 사람의 운전기사에게 물어보고 목사님을 바로 알려거든 그 교회의 사찰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누구를 막론하고 가까이서 그 사람을 오랫동안 겪어보면 이처럼 엉뚱하고도 뜻밖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의 대 문호 톨스토이는 방탕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왔을 때 이렇게 다짐을 하였습니다. “나는 죄인이야”라고 말입니다. 그는 평생을 두고 자신이 죄인임을 한 순간도 잊지 않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신과 인간의 차이점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고상하고 숭고해 보여도 내면 속 깊은 곳에서는 무서운 죄성과 완전치 못한 수치스러움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 역사 학자 중에 가장 유명하다는 한 사람이 10대 소녀와 원조교제를 하다가 유죄 평결을 받으므로 사회적인 큰 무리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께서도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다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바라보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것입니다. 그분에게만 근접지 못할 거룩함이 넘치고 능치 못할 능력이 넘치며 죄인 된 우리들을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넘치는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결코 완전함이나 거룩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기대하고 믿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이 있으므로 이와 같은 착각에 빠지지 않도록 신과 인간은 다르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늘 가슴에 담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될 때 조금 더 인간미 넘치는 너그러운 가슴으로 이웃과 따뜻한 사랑을 나누는 좋은 관계를 지속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다 같은 죄인이라는 동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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