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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근 목사 칼럼]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최인근 목사(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담임)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힘든 세상에서 고통에 짓눌린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예수 믿는 사람이 자살을 해도 천국에 갈 수 있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는 자신 있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물론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그 사람은 그만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자고로 목사는 말로서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말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젊은이들에게 부탁하기를, ‘농담으로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목사들이 그 얼마나 말에 신중하고 책임 있는 말을 해야 하겠는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나 또한 예외 없이 말에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한창 교회에 새 신자가 많이 들어 올 때 그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를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30대의 젊은 부부가 출석을 하게 되었는데 등록도 하지 않은터라 개인적인 신상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설교를 마치고 성전 문 앞에서 인사를 나누면서 별 생각 없이 물어 보았습니다. “오늘은 아버님을 모시고 오셨습니까?”하고 말입니다. 그러자 그 여인이 금새 안색이 변하면서 “제 남편인데요”하는 것이 아닌가? 아차 싶었습니다. 다른 날처럼 그냥 “반갑습니다”하고 말았으면 되었을 것을, 왜 그날은 더욱 친절하게 아는 척 했는지? 남편을 보고 아버지라고 했으니 그런 실수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타나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 사람 전도는 잘하지 못하면서 제발로 걸어온 사람도 이렇게 쫓아 버렸으니 목사의 말 한마디가 그 얼마나 중요한가를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오죽하였으면 야고보 사도가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하였겠습니까? 말은 사상의 표현입니다. 마음속에 있는 것이 말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바깥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을 많이 하게 되면 자기 자신의 속을 그만큼 노출시키게 됩니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요 웅변은 은이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성도들을 향하여서는 말에 조심하고 말로 형제의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너무나도 말에 절제를 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은혜스러운 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멋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일 수 있는 목회자가 그리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좋은 새해가 밝고도 또 다시 다섯 달이나 지나고 있는데 이제는 은혜가 되고 덕이 되며 생명을 살리는 멋진 말로 주님의 향기를 발하는 그런 아름다움을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샘도 한 구멍에서 단 물과 쓴 물을 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노회나 총회에 가보면 필자가 과연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를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생각 없이 나온 말 한 마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명을 죽일 수도 있다는 두려운 마음으로 말을 다스린다면 한결 우리들의 삶이 유쾌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형제를 실족하게 할 우려가 있다면 평생 고기도 먹지 않겠다고 하였는데 차라리 벙어리가 되더라도 형제를 실족하지 않도록 말에 조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 그래야 설교가 살고 성도가 살며 목회가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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