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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근 목사 칼럼] 달리다굼

최인근 목사(시애틀빌립보장로교회 담임)

달리다굼

지난해 7월 21일 Bony Lake에서 살고 있는 웨스트레이크씨는 친구 집에서 무더운 여름 밤을 잘 보내고 아침 8시경에 집으로 돌아 왔다. 마침 카싵에 놓인 11개월된 케시는 곤히 잠들어 있기에 깨우기가 안쓰러워 그냥 두고 일단 집으로 들어 왔다. 특별히 할 일도 손에 잡히지 아니하고 친구 집에서 놀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었던 탓에 곤하기도 하여 잠시 머리를 눕히고 쉬면서 하루 일과를 머리 속에 그려 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여름 아침의 시원함에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깜짝 놀라 깨어나 보니 오후 1시가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차에 두고 내린 케시가 생각나서 바깥으로 뛰어 나가 보았더니 이미 아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한 여름의 뜨거운 땡볕에 차 안의 온도가 너무나 달아 올라 어린 아이가 견디지를 못한 채 질식사한 것이었다. 잠이 원수라고 땅을 치며 통곡하였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잠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너무 많이 자도 나태하고 늘어져서 못쓰게 되고 그렇다고 너무 자지 않아도 건강상 해가 되어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없게 되니 이것이 문제다. 특별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애틀의 여름 밤은 너무나도 짧아서 자신을 잘 다스려 잠자는 시간을 조절하지 아니하면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기 일쑤다. 얼마나 자야 건강하게 활동하면서 생활의 리듬을 깨지 아니 하고 효과적인 생활을 유지해 나갈 수 있을까?

타임 잡지에 게재된 잠에 대한 기사를 참고해 보니 사람 마다 동일하게 적용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하루에 6시간 정도가 적당한 시간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하루에 3시간을 자고도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데 조금도 지장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잠자는 시간을 적당하게 잘 조절하여서 하루에 1시간만 절약을 하게 되면 1년에 15일을 세이브하게 된다. 이는 우리들의 분주한 삶에 비하면 대단한 수치다. 이는 비단 육신 적인 잠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영혼이 잠들어 있는 상태는 더 더욱 문제다.

성경은 죽은 상태를 잠에다 비유하였다. 잠이란 그토록 무서운 것이다. 우리들의 소중한 삶을 이처럼 무서운 죽음의 세계에 방치해 둔다면 그것은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죄악이 될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잠을 많이 자는 자들을 일단 게으른 사람으로 단정하고 그렇게 잠자기를 좋아 하면 가난하여 질 것이라고 경고 하고 있다. “(잠24:33) 네가 좀더 자자,좀더 졸자,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리라”는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헬라어에 [달리다굼]이란 말이 있다. 이는 ‘소녀야 일어나라’는 뜻이다.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 주님께서 이렇게 [달리다굼] 하시니 즉석에서 다시 살아난 역사가 있었다. 주님의 이 음성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절실히 필요한 명령이다. 잠시 잠깐의 잠이 귀중한 생명을 앗아 갔듯이 잠에 취한 우리들의 영육을 마귀가 도적질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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