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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기획] 사적지 지정 앞둔 총회 신앙유산] (29)김제 대창교회

대창리에서는 어느 집 문을 두드려도 기독교인을 만날 수 있다. 너무 과장한 게 아니냐고 되물을 만도 하다. 하지만 마을주민 98%가 대창교회 교인이라 하니 결코 없는 얘기가 아니다.

김제시 죽산면의 대창교회(김영복 목사) 사방이 예수마을이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120년 전의 일이다. 미국남장로교 군산선교부 소속 전킨 선교사가 1897년 김제 송지동교회에 이어 1900년 입석리교회(월성리교회)를 세웠고, 대창리의 이순명 이기선 최학성 최학삼 최태삼 최윤중 등 5명이 입석리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다.

그 무렵은 친일세력들이 마을에 해악을 끼치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신앙과 의기를 겸비한 다섯 사람은 동네사람들을 보호하고 규합하는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1903년 4월 10일 최윤중씨 집 4간을 빌리고, 이기선씨를 전도인으로 초청해 목요기도회를 시작했다.

①전북의 첫 자생교회 그리고 6·25 당시의 순교사적을 자랑스런 신앙유산으로 간직한 김제 대창교회 전경. ②1950년 3월 제1회 김제노회 성경학교 졸업사진. 앞줄 오른쪽 끝이 같은 해 9월에 순교한 대창교회 안덕윤 목사. ③70년 가까이 대창교회와 세월을 함께 해 온 예배당 종탑. ④1903년부터의 대창교회 역사가 정리된 교회록. ⑤1932년 조직되어 김제에 최초로 등장한 대창교회 6인조 관악단. ⑥복지관과 도서관으로 사용되어 온 건물이 앞으로 역사관으로 개조될 예정이다.

이 목요기도회를 모태 삼아 대창교회는 전북지역의 첫 자생교회로 설립된다. 1905년에는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헌금하여 첫 예배당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 착실하고 부지런한 교회에 선교부도 많은 애정을 쏟았다. 전킨 선교사는 김필수 장로를 대동하고 자주 대창리로 찾아와 교인들의 신앙을 격려하고 세례도 베풀었다.

1906년 교회에 부흥기를 가져온 사건 하나가 벌어진다. 당시 대창리에는 임덕운이라는 갑부가 살고 있었다. 술을 팔아 큰돈을 벌고 처첩을 셋씩이나 거느린, 그야말로 복음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인생이었다. 그런 인물이 갑자기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는 소식은 온 김제를 깜짝 놀라게 했다.

소문이 떠들썩하게 퍼져나갔다. ‘임덕운이 감화를 받아 두 첩을 내보내고, 아내랑 가족을 애호하는 사람이 됐다네 그려.’ ‘게다가 그의 온 집안이 세례를 받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다네.’

과연 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야기가 맞는지 확인하고 싶어 많은 사람들이 주일이면 대창교회에 구경 왔다. 심지어 그 구경꾼들 중에서도 회심하는 이들이 생겨났다. 교회는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1910년에는 예배당을 증축해 동명학원이라는 이름의 학교를 개설하고 남녀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1922년에는 훨씬 더 큰 예배당을 지어 봉헌했으며, 1927년부터는 한글을 모르는 부녀자들을 위한 야학회를 운영했다. 1932년에 김제 최초로 조직된 6인조 관악대는 예배와 전도사역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하며, 교회의 커다란 자랑이 됐다.

늘 평온한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로로 섬기다가 평양신학교 졸업 후 담임목사로 돌아온 최학삼이 친일파 이완용과 대결한 일화가 대표적이다.

이완용이 자기 소유지에 물을 대기 위해 마을하천을 보로 막아버리자, 최학삼은 동네 사람들의 논에 물을 댈 수 있도록 교회 청년들과 함께 새벽예배를 마친 후 보를 허물어버렸다. 이 사건으로 최학삼은 이완용과 법정 대결까지 벌였고, 끝내 승소를 거두었다고 전해진다. 이후에도 일제의 거듭된 수탈로 교우들도, 교회도 긴 세월 힘든 시간을 보냈다.

특히 6·25 전쟁은 대창교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놓았다. 1950년 9월 28일은 교회 역사상 가장 슬픈 날이었다.

전남 광양 출신으로 한 해 전 제7대 당회장으로 부임한 안덕윤 목사는 전쟁이 벌어진지 한참이 지나서도 꿋꿋이 교회에 버티고 있었다. 누구도 그의 결연한 뜻을 바꾸지 못했다. 결국 이날 그는 순교의 제물로 바쳐졌고, 담임목사가 걷는 고난의 길에 최창진 집사와 최태섭 김판동 등 청년성도들이 나란히 동행했다.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은 이런 기록으로 남아있다.

“안덕윤 목사는 성도들의 피신 권유에도 교회를 지키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다 순교했다. 이때 교회 청년 세 사람도 김제 ‘관제’(현 한전 김제지사 부근)라는 저수지로 끌려가 공산당과 좌익들이 죽창으로 수없이 찔러 죽임으로 순교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당시 ‘영당’(현 새만금미곡처리장)이라 불리는 쌀 창고에 교인들을 가두고 불을 질러 죽이려 했으나 당시 미군 비행기가 나타나자 혼비백산 달아났고, 그 틈을 타 교인들은 모두 탈출했다.”

끔찍한 시련이었지만 교회를 와해시키지는 못했다. 오히려 이후로 신앙적 정체성과 순교자들의 후예라는 자부심이 교우들 사이에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서 교회는 점점 더 단단해졌다. 그리고 이 거룩한 자존감은 마을복음화의 비전을 기어이 성취하고, 강산이 12번이나 바뀌도록 대창교회를 지탱해 온 동력이 되었다.

대창교회에는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수많은 유산들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1903년 설립 당시부터의 사적을 기록한 교회사(교회록)는 호남기독교박물관에서 1년 동안 전시될 정도로 가치를 인정받는 역사자료이고, 소화13년(1938년) 발행된 성경과 1950년대에 제작된 교회 종과 철제종탑, 1932년 최윤중 장로 근속기념비 등 교회당 곳곳에서 옛 자취들을 찾을 수 있다.

감춰진 교회 역사를 발굴하는데 앞장서온 김형곤 장로는 “유형의 자산들도 소중하지만 역대 담임목사님과 성도들이 조국과 교회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무형의 자산들이 대창교회의 오늘을 있게 한 소중한 가치”라고 강조한다.

김 장로는 올 가을 총회에 대창교회 순교자들의 총회 순교자명부 등재 청원과 순교자기념교회 지정 청원,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 청원 등의 관련 서류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 결과 이미 순교자 등재가 이루어진 안덕윤 목사를 제외한 최창진 최태섭 김판동 등 3명의 등재를 위해 각종 기록들을 찾아내고 증언 녹취에 성공하는 등의 성과를 거두었다.

대창교회는 이렇게 보존되고 새롭게 수집된 자료들을 중심으로 역사관 건립을 추진하는 중이다. 설립 120주년이 되는 내년에는 그간의 결실들이 교우들과 일반에 공개되리라 기대된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찾아낸 과거의 이야기들은 다시 새로운 100년의 추진력이 될 것이다.

“자랑스러운 교회 역사 목회 버팀목”


김영복 목사는 훌륭한 역사적 자산들을 교회의 지속적 동력으로 삼겠다고 밝힌다.

[대창교회 김영복 목사]

“마을복음화를 이루고, 순교의 영광을 간직한 교회인 동시에 지역사회의 개화와 계몽을 이끈 교회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그 자랑스러운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김제 대창교회 담임목사로 18년째 사역 중인 김영복 목사는 교회의 강점과 특수성을 살리는 목회에 집중하는 중이라고 밝힌다. 마을 대다수가 복음화 되었다는 것은 성장의 여지가 크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게다가 마을마다 교회가 촘촘히 세워져 교구개념이 확실한 김제지역의 특성도 사역의 폭을 넓히는데 제한을 가한다. 다른 대안이 필요하다.

“기성세대 뿐 아니라 다음세대까지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건강한 신앙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모하려 합니다. 실제로 성도들이 긍지를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이 교회 주변은 물론이고, 고 안덕윤 목사의 고향인 전남 광양 등에까지 산재해 있어 산교육에 도움이 됩니다.”

당초 복지관으로 활용하려던 건물을 역사관으로 개조하고, 순교자 등재 및 한국기독교역사사적지 지정을 추진하는 등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과거의 보배들이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지탱하는 힘을 지녔다고 믿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로 침체된 예배신앙을 회복하고, 지역사회에 새롭게 유입되는 귀농·귀촌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도 게을리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한다. 쉽지는 않겠지만 자신감은 충만하다고 김영복 목사는 말한다. 그럴만한 근거가 있기 때문이다.

“비록 크고 작은 부침은 있을지언정 어떤 분란도 없이 평안한 공동체의 모습을 지켜왔습니다. 당회원들끼리 관계도 화목하고, 무엇보다 앞장서 헌신하는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저력들을 바탕으로 누구나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교회의 위상을 계속 세워나가겠습니다.”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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