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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호 박사 칼럼] 아브라함 언약의 점진성 (후편)

손성호 박사

아브라함 언약의 점진성 (후편)

아브라함은 창세기의 중심인물이다. 구속사의 요약이라고 할 수 있는 족보가 10번 나오는데 5번째 나오는 아브라함은 아담부터 바벨과 이삭 그리고 큰 민족을 이룬 야곱의 후손을 아무르는 인물이다. 그뿐 아니라 아브라함 언약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통합한 ‘참 이스라엘’ 혹은 ‘온 이스라엘’(롬 11:26)과 맺은 언약으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즐겨 하나님 자신이 사용하신다. 하나님의 이름, 야웨 יְהֹוָה 자체가 언약의 하나님이신 것을 나타낸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언약, 노아언약, 모세언약, 다윗언약의 중심에 아브라함 언약이 서 있고 그리스도의 새 언약으로 성취된다. 아브라함 언약은 ‘복음’ εὐαγγέλιον의 핵심이다.

바울도 이렇게 말한다.

갈 3:8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돼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하나님께서는 123년 동안 7번 나타나시어 언약을 말씀하신다. 이 언약은 반복, 첨가되면서 점진적으로 확실해진다. 하나님은 갈데아 우르에서 첫 번째 언약을 주시고, 두 번째 언약에서 네가 보는 주변의 땅을 주시겠다는 땅의 약속을 첨가하신다. 세 번째 언약에서 땅을 ‘네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첨가하시는데 바울은 ‘자손’ זרע을 단수로 해석하여 ‘예수’를 가리킨다(갈 3.16)고 말한다. 네 번째 언약에서 ‘네 자손’은 ‘네 몸에서 날 자’로 더 분명하게 말하신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이것을 믿게 되고 하나님은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은 비로소 자기 몸에서 날 자 중 한 자손 즉 한 사람[the one] 예수를 통하여 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을 알았다.

바울뿐 아니라 베드로도 자손을 단수, 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행 3:25-26, 새번역]

25 여러분은 예언자들의 자손이며,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의 자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의 자손으로 말미암아 땅 위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6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악에서 돌아서게 하셔서, 여러분에게 복을 내려 주시려고, 먼저 자기의 종[예수]을 일으켜 세우시고, 그[예수]를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

여기까지 복습을 했고 이제 남은 3개의 언약을 생각해 보자.

다섯째 언약이다.

[창 17:1-5]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אֵ֣ל שַׁדַּ֔י)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3 아브람이 엎드렸더니 하나님이 또 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4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5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중간 생략]

16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가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17 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마음속으로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출산하리요 하고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를 여러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여러 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다섯 번째 언약은 자세하게 많은 것들을 약속하신다. 그러나 아브라함도 사라도 믿지 못하고 웃고 만다. 네 번째 언약을 받고, 14년 만에 받아서일까? 아니면 약속이 엄청나서일까? 지난번 약속받을 때, 자손 한 사람 예수를 주실 것을 알고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고 인정을 받았는데 이제는 믿지 못하는 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자기나 아내가 죽은 몸이 돼버려 믿음이 약해져 버린 것이다. 세 번째 언약을 받을 때는 성급하게 굴다가 하갈을 취하는 시험에 빠졌는데 이제는 사라에게서 후사를 주시겠다고 하니 이번에는 더디 믿어서 시험에 빠졌다. 믿음이 좋은 아브라함도 시험에 빠졌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할까?

이번 언약을 살펴보자. 언약을 주실 때는 여호와(야웨)의 하나님으로 그동안 나타나셨다. 이 칭호는 언약을 꼭 지키겠다는 약속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엘샤다이 즉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서 능히 실행하실 능력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생각하는 상속자는 여러 번 바뀌었다 처음에는 조카 롯에서, 종 엘리에셀로, 그다음에는 이스마엘인 줄 알고 13년을 애지중지 사랑했는데 이도 상속자가 아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은 99세 사라는 89세로 죽은 몸같이 되어 모든 희망이 사라져 버렸을 이때 엘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나타나사 아들을 주시겠다고 확인시켜 주시니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위해서는 인내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을 느끼게 한다.

이번 다섯째 언약은 아주 구체적이다. 1) 사라의 몸에서 후사를 주리라고 처음 언급하시고 2) 아브라함과 사라라는 새 이름을 주시어 열국의 아비와 어미 즉 후손이 많을 것을 확인해 주셨고, 3) 언약의 증표로 지난번에는 횃불의 증표를 주셨는데 이번에는 새로운 할례를 주셨다. 약속의 증표를 몸에다 새겨 주신 것이다. 할례의 증표도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잘린다, 죽는다는 횃불 증표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새 언약처럼 피의 언약이다. 4) 이번에는 출생일도 구체적을 ‘내년 이맘때’로 알려주시고 5)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어 주셨다. 6) 여러 왕을 주실 것이다고 하셨다.

이후에 세 천사가 나타나 여섯째 언약을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세 천사 중 한 분으로 나타나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최종적으로 자신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하나님의 천사로 자주 나타나신다. 구약에 나오는 ‘여호와의 사자’는 성자 예수님이시다. 찰스 하지는 예수님을 가리켜 말하기를 “여호와의 사자는 성부와 구별되는 독특한 위격을 지닌 신성한 존재임이 분명하다”라고 말한다. 예수님은 돌베개를 하고 자는 야곱에게 꿈속에 나타나셨고, 후에 얍복강에서 야곱과 밤새 씨름하셨다. 예수님은 가시떨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칼로 잡아 드리려고 할 때, 황급히 막으신 분도 예수님이시다.

[창 18:10-12]

10 그가 이르시되 내년 이맘때 내가 반드시 네게로 돌아오리니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 사라가 그 뒤 장막 문에서 들었더라

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12 사라가 속으로 웃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웃고 말았다. 그러나 이 사실을 바울은 다음과 이야기한다.

[롬 4:18-24]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여섯 번째 언약에서도 네 번째 언약에서처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의롭다 함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브라함은 성숙(성화)되어 갔다. 어린 아들까지 바칠 수 있는 신앙으로 성장했다. 마지막 일곱 번째 언약을 보자.

[창 22:15-18]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זֶרַע]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18 또 네 씨로[זֶרַע]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네 번째 언약에서 ‘씨’가 후손 중 한 분[the one]이라고 아브라함은 믿었는데 바로 그분을 만난 것이다. 예수님은 네 씨가 많게 해 주겠다고 많은 후손을 약속하시고 18절에 ‘네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실 때는 단수의 개념으로 자기 자신을 지목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씨’를 뵙게 되었다. 이런 영광이 어디 있겠는가!!!! 예수님도 아들을 드리려는 아브라함의 모습에서 십자가 위에 달린 자신의 모습을 보셨을 것이다. 이곳은 후일에 갈보리로 십자가가 이 자리에 세워졌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자주 약속받은 자손과 땅을 얼마나 받았을까?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후손이 많을 것이라고 했지만 고작 독자 이삭과 쌍둥이 손자, 에서와 야곱을 보았을 뿐이다. 땅은 어떤가? ‘발붙일 땅도’(행 7.5) 생전에 얻지 못했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말한다.

[히 11:1-2]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필자는 이 글을 쓰면서 심히 감격했다. 동시에 심히 부끄러웠다. 아브라함과 예수님을 따로국밥으로 이해하고 있었으니. ㅠㅠ

/ 필자 손성호 박사는 총신대학 종교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총신신학대학원(M. Div), 리폼드신학대학원(MRE),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석사(MRE)및 철학박사(기독교 교육 전공)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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