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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자립개발원·기독신문 공동기획/ 목회자이중직 문제, 이제는 직시할 때] (4)두 사모 이야기

목회자의 생계와 이중직에 대한 문제는 당사자만 아니라 배우자와 자녀 등 가족 전체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현안입니다. 특히 ‘사모’로 지칭되는 목회자 아내들에게는 오히려 더 실질적으로 체감되는 사안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사모들의 시선으로 관련 주제를 살피며, 앞으로 공동체적 관점으로 이중직 문제가 확장되어 다뤄지기를 기대합니다. <편집자 주>

목회자 이중직의 문제는 당사자만 아니라 가족들 전체, 특히 목회자의 배우자들에게는 더욱 절실한 사안으로 부각되고 있다. 사진은 전국사모수련회에 참석한 사모들의 모습.

교회 건강히 세우는 이중직 부끄러워 말자

저는 ‘이중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마음에 와 닿지도 않고 다소 거북하기도 한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마치 이중직을 하는 사역자는 떳떳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부끄러운 일을 하고 있다는 부정적 시각이 내재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제가 하는 일이 좁게는 목사인 남편을 도우며 내 가족을 살리는 일이고, 넓게는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가는 사역이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저는 신학부 3학년 과정의 교육전도사(신학부 3학년)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신대원 졸업까지 남편의 학비를 책임졌고, 두 아이를 양육하며 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실질적 가장 역할을 30년 정도 했습니다.

남편은 사역을 한 번도 쉰 적이 없었지만, 교회에서 제공하는 교역자 사례비로는 4인 가족의 생계를 도저히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부름을 받은 사람으로서 목회를 위해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력해야 한다며(행 6:4), 먹고 사는 문제를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설득당한 저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직업을 내려놓고, 돈이 없어 보일러도 못 틀고, 아이들 과자도 사주지 못하는 ‘경제적 바닥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저는 몸과 마음은 병들고, 사모로서의 자존감이 하나도 없어 정체성조차도 흔들리는, 교회 안에 마치 죄 많은 이방 여인처럼 그냥 존재만 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떠밀리듯이 미국 유학길에 올라섰습니다. 3년의 가난한 유학 생활도 저에게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루에 12시간 서서 일하고, 매일 밤 진통제를 먹어야 했습니다. 기도할 때마다 원망과 고통이 가득한 내용을 담아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저를 오늘 밤 데려가세요, 주님 더 이상 살 수가 없어요, 저는 남편 먹여 살리라고 이 세상에 태어났어요?”

한 주 한 주를 넘기는 것이 저의 목표였는데 하나님의 목표는 아주 달랐습니다. 한 코스의 훈련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은 그곳에 우리 가족이 이겨낼 수 있도록 천사를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시고, 우리 부부를 왕 같은 제사장으로 만들어 가셨습니다.

최근 많은 목회자들이 코로나19의 여파로 생계를 위하여 이중직을 시작했는데, 그 중 적지 않은 수가 죄책감을 느끼는 상황이라는 연구가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지키고 사명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이들에게 누가 무거운 죄책감의 멍에를 씌울 수 있습니까? ‘사모(교역자)가 되어서 몇 푼이나 번다고 그깟 일을 하냐’라며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저는 저의 삶을 공유하면서 이중직 목회자들이 가지고 있는 이 무거운 중압감이 벗어지기를 소원해봅니다.

저희 가정은 남편이 담임목사가 된 후에도 여전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간호사, 사회복지사, 영어강사, 대학교수 등 여러 직업을 수행하면서 교회와 가정을 도왔습니다. 이렇게 교회가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 말씀(고전10:31)에 순종하여 사역하니 교회는 든든히 세워져 가고 있습니다.

제가 이중직을 하는 이유는 첫째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기 위해, 둘째 ‘기독교세계관을 가지고 선교의 도구가 되기 위하여’ 입니다. 저는 기독교인들의 직업관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의 달란트를 목회에만 사용해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교회를 건강하게 세워나가기 위해서 목회자 부부는 죄짓는 일 빼고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빈 공간을 복지와 선교의 장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합법적으로 준비하고, 목회자는 선교의 도구인 자기 자신을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즉 지역사회에 접근할 수 있는 기술이나 자격증 등을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현장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장정애 사모는

인천 주안동에서 남편 이형린 목사와 풍성교회와 사회복지법인 ‘풍성하게’를 설립해 사역하고 있습니다. 청운대학교 사회복지학 교수와 인천사회복지연구소 소장으로도 재직하는 중입니다.

생존의 문제 넘어 사회적 목회로 나아가야

‘위기는 항상 기회이다!’라는 생각으로 살아왔습니다. 20년 전, 청빙 받은 담임목회지로의 이사를 코앞에 두고 ‘청빙이 무산되었으니 오지 말라’는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한국에 교회가 너무 많아서 더 이상 교회개척은 필요치 않다고 생각했던 저희 부부는 갑작스런 절망가운데 어쩔 수 없이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굳이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워야 한다면 지역사회에 꼭 필요한 교회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못한 채, 경기도 평택의 변두리에 위치한 허름한 상가 2층에 예배실 18평, 사택 7평을 임대하였습니다. 2003년 3월 30일, 성도 한가정과 돗자리 깔고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개척 후 6개월 동안은 구경 오는 사람조차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시어머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셔서 모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습니다. 주일이면 예배실 바로 옆에 붙어있던 사택에서 성도의 교제와 식사를 해야했기에, 시어머니를 편히 모시고자 따로 집을 얻어 이사했습니다.

빈 사택공간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소장하고 있던 책 2000권을 기반으로 마을도서관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도서관에 앉아서 전도했습니다. 어렵게 찾아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주니 얼마나 좋았는지요! 성실하게 맞아주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주었을 뿐인데, 때가 되자 그들은 복음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은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꿈의 탱크였습니다. 문턱 없는 도서관이 되어 누구나 편하게, 비신앙인들이 내 집처럼 왕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연령대별 독서모임, 책 읽어주기, 교육활동, 마을 잔치(윷놀이대회, 문학의 밤, 작은 음악회 등), 역사캠프 및 기행, 다양한 봉사활동, 문화 강의, 동아리 활동, 벼룩시장, 품앗이 교육 등을 했습니다. 시립도서관에서 맛볼 수 없는 귀한 것들이 우리 작은 도서관에 있었습니다.

개척 후 2년 동안은 목회자가 교회재정을 관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희 부부는 믿음으로 재정 원칙을 정했습니다. 먼저는 총회와 노회로부터 지원금을 받지 않았습니다. 또한 매월 재정의 40%는 무조건 외부 선교와 구제를 위해 사용했습니다. 궁핍한 경제를 위해 돈 버는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은 마음을 불어넣어 주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합니다.

그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 지역사회와 어려운 이웃을 섬길 수 있는 교회를 꿈꾸며 즐거이 헌신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저희 가정을 눈동자처럼 살펴주셨고, 개척기간에 세 명의 아들을 입양할 수 있는 큰 은혜까지 주셨습니다. 교회의 지경과 사역도 넓혀주셨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믿고, 행하는 것임을 경험했습니다.

오늘날에도 너무나 많은 미래자립교회들이 ‘생계형 이중직 목회’ 문제로 목회자와 가족, 성도와 교회까지 위태롭고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참으로 마음 아프고 시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목회자 이중직 문제 앞에서 많은 분들이 ‘교회란 무엇인가? 목회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깊이 성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중직 목회는 최근 시작된 목회모델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어 온 하나의 목회모델입니다. 목회에는 전통적인 전임목회모델 외에도 이중직 목회와 같은 다양한 모델이 존재할 수 있고 어떤 모델의 목회이든 나름의 장단점이 존재합니다.

교회가 생존과 성장이라는 자신만의 울타리를 넘어, 선교적이고 사회적인 목회로 나아갈 때 비로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입니다. 부디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삼아 이중직 문제에 현명히 대처함으로 한국교회 부흥의 원동력이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 이대인 사모는

경기도 평택에서 남편 권혁철 목사와 함께 송탄장로교회와 장당마을도서관을 세워 섬기고 있습니다. (사)입양가족상담교육협회 상담사, 국제청소년성취포상제 포상담당관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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